평화로운 치료 생활
정형외과에서 어깨 힘줄과 근육 치료를 받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은 오라던 물리치료를 일주일에 한두 번 받고 있는 불량 환자이지만 점차 통증이 줄어들고 있어서 다행이다.
내 겉모습은 우람해서 건강 그 자체일 것만 같지만, 건강했던 적은 평생 동안 별로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뻔하다가 겨우 세상에 나왔고, 희귀병까지 걸려 색색 거리다가 무사히 어른이 되었으니. 건강 대신 끈질긴 생명의 근성은 타고 난 걸지도 모른다. 최근에도 백신 부작용부터 해서 턱 디스크 재발까지 가지각색으로 병원을 다니며 보험비를 뽕뽑고 있다. 시골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데, 근처에 병원이 종류별로 없으면 안 되니까 소도시로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해본 요즘이었다.
정형외과 물리치료는 꽤나 평화롭다. 치과치료는 운동기구에 누운 것 마냥 불편하게 뒤로 뉘어서 흉한 얼굴을 보여야 하는 반면, 정형외과에선 잠들지 않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간호사분은 '엄마손은 약손'처럼 기계로 부드럽게 통증 부위를 문대 주시고, 뜨끈한 찜질팩으로 배 위까지 덮어주신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선 라라랜드의 OST가 재즈풍으로 흘러나와서 꼭 카페에서 노곤 노곤하게 잠드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딱딱한 병원 침대인데,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을 만큼 편안하다. 항상 치료가 끝나면 불면증이 언제 있었냐는 듯, 눈꺼풀이 뻑뻑해진 채로 몸을 일으킨다.
어르신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올 때는 잠에 들지 않고 혼자 조용히 키득거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허리가 안 좋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오시는데, 젊은이인 나는 대화에 참전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는다. 친척이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맞춰주는 일이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나잇대가 다른 사람들의 대화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꽤 값진 경험이다.
하루는 허리에 주사를 몇 방이고 맞으신 할머니가 "애기 낳을 때 아픔 생각하면 참을 만 혀. 아직도 그걸로 버틴다니까."라는 말을 듣고 괜스레 뭉클해졌다. 인생의 수많은 고생보다 아기 낳는 고통이 제일이라니. 조금 1차원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눈물이 쏙 들어갔다.
어르신분들은 꼭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신다. "감사합니다."가 익숙한 나는 그게 뭔가 어른의 인사같이 느껴진다. 몇 살쯤 되었을 때 나도 "고맙습니다."가 입에서 나올까. 감사보다는 고마움이 조금 더 정이 배어 나오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