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자 각자의 사정으로 바빠진 학창 시절 친구들은 좀처럼 다 같이 모이기 힘들었다.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나면 모이는 방식이 고착화되어 더욱 그랬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우리 한번 모여야지?”라는 말이 여름 한복판, 그리고 연말연시에 슬그머니 나왔다. 모든 멤버들이 ‘모인다’라는 의무감으로 한 달간 겨우 시간을 맞춰봐야 했다. 그렇게 6개월 중, 혹은 1년 중 하루를 잡아 누군가의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난 오후 6시쯤 모여 밥 한 끼를 하고 디저트 한 세트를 먹었다. 도중엔 각자의 지나간 얘기와 함께했던 추억 이야기를 한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게 참 싫었다.
나는 특별한 사건보다도 일상의 소소한 조각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 더 자주 만나고 싶었고 실없는 대화도 하고 싶었다. ‘오늘 엄마랑 다퉜는데 속상해.’ ‘오늘 점심으로 파스타를 해 먹었는데 내 요리 좀 쩌는 것 같아!’ ‘오늘 달이 유난히 예쁘다, 봤어?’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생일날에 기프트콘보다 고심해서 고른 선물을 정성껏 포장해서 건네며 축하하고, 축하받고 싶었다. 내가 먼저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날짜에 맞춰 미리 준비해둔 선물박스는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몇 개월이고 방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특별한 날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더 이상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제안하는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가족이 됐든, 다른 친구가 됐든 내 자리는 아니구나 싶었다. 섭섭하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치였고 누군가의 자리 잡힌 일상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씁쓸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이해관계없이 나눌 수 있게 됐다. 바로 연인이었다. 좋은 것을 보면 하나 둘 사모아 왕창 퍼주어도 호구가 아닌 넘치는 사랑이 되었고, 비싼 선물을 받아도 보답을 걱정하기 이전에 감동과 고마움부터 느끼는 그런 관계였다. 이게 가능한 것은 연인인 해와 내가 서로 같은 성향이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서로를 특별한 관계라 여기고 애정을 담아 소통하며 만남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일과 선물에 대한 이야기길 더 해보자면 나의 연인 해는 본래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축하를 받아본 경험이 적었다. 기념일과 선물에 대해서도 무감각했다. 반면에 나는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챙기고 기념하고 축하했다. 그런 나는 해의 생일을 어느 날 보다도 특별한 날로 여겼다. 해가 나와 같은 년도에 태어나 동갑인 친구가 된 것도 좋았고, 무사히 태어나 자라서 건강하게 날 만나게 된 것도 새삼 기뻤다. 해와 내가 같은 세상에서 만날 수 있게 된 의미 있는 날이었다. 해가 생일날 만큼은 행복하게 기억하고 충분히 축하받는 하루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처음 함께 보내는 해의 생일에 파티를 열었다. 친한 동기들을 모아 떠들썩하게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선물 증정식을 하고, 생일 고깔을 씌우고 케이크에 초를 킨 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처음 생일 파티란 걸 하게 된 그는 얼떨떨해했다. 나는 네 생일은 무릇 축하받아야 마땅한 특별한 날이니 어색해하지 말라 했다. 그다음 해에도 난 그가 제일 좋아할 만한걸,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해의 생일 몇 달 전부터 고심하며 준비했다. 해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했다. 그는 더 이상 얼떨떨해하지 않았고 빵 터져 웃으며 기뻐했다. 그는 이제 스스로 생일을 챙긴다. 소중하게 여기고 특별하게 생각한다. 나의 마음과 의미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내 생일 또한 해에게 특별한 날이 되어 함께 기념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본래 쿵짝이 잘 맞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젠 내 생일에 해는 꽃다발을 준비하고, 함께 여행을 가며 행복한 날을 보낸다. 선물을 고르는데 센스가 없어도, 가격이 어떻다 해도 무슨 상관일까.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른 그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다른 무언가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결제하는 그의 마음이 기특하다. 어느 무엇도 당연한 건 없었다. 누군가는 정성스레 표현하고, 누군가는 그걸 알고 노력해서 시간을 낸 거다.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나를 위해 내어 주는 사람, 그리고 그걸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사람. 그 사람이 우선순위인 게 뭐가 잘못된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제 3자의 말과 쏟아지는 미디어 콘텐츠는 죄책감을 가지게 한다. 내가 연애에 빠져 주변을 못 돌아보고 친구에게 소홀히 하는 게 아닐까? 친구들과 더 시간을 내서 많이 만나고 챙겨야 하는 게 아닐까? 알콩달콩 연애를 하다가도 주변에서 쓴소릴 먼저 할지도 모른다. 연인에게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는 사람에게 부모님이나 챙기라던가. 애인은 사랑해봐야 헤어지면 끝이고 친구는 영원해~ 라던가. 아니, 친구도 영원하지 않다. 가족의 사랑도 누군가에겐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친구도, 가족도 결국은 타인이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주는 사랑은 각각 한정된 양이 있다. 그 한정된 사랑의 양을 듬뿍 떼어주는 사람에게 나도 사랑을 듬뿍 준다는데 그게 미련한 짓인가. 기간제일지언정 풍부한 사랑을 주고받은 경험은 값지다. 사랑은 프로페셔널한 커리어가 아니지 않나. 내가 좋으려고,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거다.
나는 사랑의 우선순위에 죄책감을 느낄 때, 주변을 돌아봤다. 누가 내 생각을 해주는지, 누가 날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생각했다. 나도 그렇고 남들도 호감정도인 사람에게까지 모두에게 사랑을 떠주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줄 사람을 더더욱 추려낸다. 사랑은 귀중하고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내게 사랑을 준 사람들, 내가 사랑을 줄 사람들을 추리면 죄책감일랑 접어두고 분배된 사랑만 하면 된다. 그뿐인 걸 과거의 난 잘하지 못했다. 일일이 상처 받고 실망하고 자책했다. 챙긴 만큼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날 생각해주길 바랐다. 단 하루, 나만의 특별한 날만큼은 나를 기억하고 축하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랑의 교환만큼 더없이 복잡하고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생일날 친구에게 실속 없지만 거대한 문구세트를 선물하며 “내가 제일 큰 선물을 했어!”라고 뿌듯해하던 날이 그립기도 하다. 나의 경우 이 그리움을 해와 연애를 하며 해소했다. 그리고 해와 원하던 깊이의 사랑을 나누며 다른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됐다. 단 한 명과의 연애가 교류의 기준점을 바꾼 거다. 누군가 연애하느라 친구들은 내팽개쳐두고 애인만 만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연인은 너무 매력적인 관계다. 물론 ‘연애’라는 행위 자체에 퐁당 빠져서 타 인간관계를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단순히 ‘연애’를 한다고 해서 친구들과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 충실한 친구 역할을 해주는 연인이 언제나 내 눈 앞, 그리고 카톡 채팅방 가장 윗 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기존 친구들과 관계가 비교적 소원해지는 거다. 반대로 친구들과 유대감이 강해서 항상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면 연인이란 관계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형태로 각자의 연애를 하고, 사랑의 양도 다름을 알기에 글을 쓰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그렇지만 연인관계를 유독 ‘유효기간을 가진 파트너’ 취급을 하거나 소중한 사랑을 미련한 짓으로 폄하하는 게 나는 조금 억울했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 제 3자의 눈치를 보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의외로 남 탓을 하기보다 나 자신의 잘못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죄책감을 이용하기로 했다. 누군가 나에게 충실히 시간을 쏟고 사랑받는 경험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더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결단력과 분별력을 만들었다. 사회생활하면서 ‘넌 나에게 충실하지 않아’라며 흥! 하고 돌아설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많겠냐마는 적어도 돼도 안 되는 관계에 애정을 쏟아가면서 (미움일지라도) 감정을 소모하진 않기로 했다. 가족과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연애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연애 특유의 간질간질한 로맨틱함 때문도 있겠지만, 온전한 나를 사랑하고 한때는 헌신적이며 끈끈한 타인과의 관계, 그 사랑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도 받아줄 수 있고 새벽까지 서로의 가감 없는 마음을 나누며 통화할 수 있는 관계. 알몸으로 누워있어도 수치스러움보다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존재. 이런 감정과 관계의 경험을 마치 계약과도 같은 연애로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연인이란 걸 원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사람으로서 너무나 큰 충족감을 주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1순위를 인생 전체에서 얼마 차지하지도 않은 연인이 손쉽게 쟁취하는 거다. 미련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연애가 어마 무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