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항상 부럽고 질투나
이럴 줄 알았다. 난 네가 군을 제대하자마자 많은 것을 척척 해낼 줄 알고 있었다. 그것에 내가 자괴감을 느낄 것을 예상했다. 다만 실제로 마주한 네 추진력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고 간단해 보여서 분하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봐주지 않을 거야.”
“뭘 봐줘? 날 얼마나 등신으로 보면 그런 말을 해.”
“그렇네. 미안.”
“축하해. 진심으로.”
나는 하던 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해의 성큼성큼 앞서가는 모습에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잘 되면 누구보다 기쁘면서도 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대한 너는 내가 멈춰있으며 겨우내 회복할 동안 빠르게 앞서 나갔다. 그야말로 군인 신분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일 뿐이었다는 듯이 많은 것을 척척 해냈다. 가장 내가 초라하고 불안할 때였다. 내 장점들을 스스로 별거 아닌 걸로 치부하고 있을 때. 해를 향한 열등감은 나를 자극시켰고, 불안감으로 뿌연 했던 안개가 거둬냈다. 나를 한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사라지자 드러난 건, 바닥까지 파묻혀 있던 의욕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물에서도 잉어가 꼬리와 지느러미를 힘차게 움직이면 물은 출렁이기 마련이다. 움직여야 수면이 움직이고,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그래, 난 네가 항상 부럽고 질투 난다. 그런 널 좋아해.
나는 해가 제대할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었다. 해를 얼른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디어!’ 보다 ‘벌써?’란 생각이 앞서 들었다. 입대 당시, 해가 민간인이 되어 나오게 되었을 때의 나의 모습 또한 함께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안정되고, 돈도 많고, 실력도 쌓아서 믿음직스럽게 사회에 나선 해를 도와주려 했다. 개뿔, 어림도 없었다.
역병의 풍파를 전면으로 맞은 나는 이미 많이 변해있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그 전의 나로 돌아가거나, 회복되어 더 나은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몸도 마음도, 사고도 변해있었다. 표정이 변했고, 무심해지고, 입꼬리가 무거워졌다. 옷차림도 한 껏 꾸민 모습이 어색해졌다. 이별한 상태가 익숙해지자 만남이 덜컥 겁이 났다. 유행하는 질병 속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무력감과 비겁한 위선이 나의 심연 깊숙이 눌러앉고 있어서 수면 위의 세상이 너무나 멀어 보였다. 발버둥 쳐도 금방 바닥으로 가라앉아 팔다릴 휘적거리는 것이 괜스레 처연하게 느껴져서 그만두기도 했다. 나는 해가 없는 동안 자기 계발은커녕 투병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오랜만에 해에게 분하다는 감정을 느끼곤 눈이 번쩍 뜨였다. 뭘 분하다 하고 있나, 싶었다. 내가 멈춰있었던 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있었던 건 내가 그것밖에 안돼서가 아니었다. 투병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거다. 고리타분한 변명 같지만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였다. 건강도, 마음도 이대로 계속될 거라며 판단의 액자를 씌웠다. 어쩔 수 없이 지지부진했던 상태를 내 분수라 생각했다. 내가 이겨야 하는 상대는 언제나 내 자신이었는데. 연인의 앞서 감은 한 줌의 자극제가 되어 덕분에 잊고 있던 감각들을 깨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러워하고 감탄하는 지점 정도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비슷한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각자의 성향은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더더욱 부각시켰다. 나는 해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를 질투했다. 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독특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드로잉의 선은 망설임 없이 자유로웠다. 해의 그림과 글은 온전히 그를 닮아 누가 봐도 해의 것임을 알았다. 쌓여있는 문서들 사이에서 이름도 쓰여있지 않은 글과 그림의 주인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독보적임이었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려서 ‘이상하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게 바로 쉽게 가질 수 없는 개성이었다.
반면에 나는 글과 그림 모두 딱딱하고 모범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 차이는 서로가 서로를 몰랐을 시절인 십 대 때 만들어진 것이리라 생각한다. 해는 방에 동화책들이 가득했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나는 동화책은 읽어본 적도 없고 스펙과 관련 없는 책은 취급도 안 했다. 내 곁엔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책들만 가득했다. 내게 주어진 환경에선 독서와 취미는 완벽한 천재에게나 용납된 행위였고, 답을 도출해내는 논술만이 내가 배운 유일한 글쓰기였다.
해의 글과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난 절대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느껴졌다. 경외와 재능에 대한 두려움마저 들었다. 그가 추구하는 ‘창작’은 너무너무 부럽지만 내가 할 수 없고, 하지는 않을 것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창작은 항상 동경해오던 것이라 하루는 그에게 “넌 글을 어떻게 그렇게 써?”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해는 어렵지 않게 답했다.
“나도 이상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거지.”
나는 그때 해의 말이 여느 교수님들의 말들보다 충격적이었다. 무례하게도, 나는 그의 글과 그림을 당연히 노력과 의도가 아닌 천부적인 재능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해의 말 덕에 깨달았다. 나는 그 노력을 언제부턴가 포기하고 그만뒀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보아도 무방하다. 나름의 이유는 차고 넘쳤다. 부모님한테 재능 없단 말을 듣고 체념했고, 당시엔 커 보였던 선배들의 타박에 주눅 들었고, 수험공부를 하다가 예체능으로 넘어간다는 게 패배자나 낙오자 같았다. 하던 것을 포기하고 간 다른 분야에서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렇게 창작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해의 글과 그림을 보고 기억해냈다. 다시금 갈증을 느끼고 말았다. 아, 창작을 하고 싶다.
나는 예술을 직접 하는 대신 차선으로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경제학과 미술사학 중 양자택일을 해야 했을 때, ‘미술’이란 이름이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알지도 못한 채 “여기 갈게요.” 해버렸다. 나는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과 유학 중 무엇을 택할까, 어떤 방식으로 이 바닥에서 뼈를 묻을까 고민했더랬다. 나는 전시장에만 가면 미친 듯이 가슴이 두근거려서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 생각했다. 그림이 사방에 가득한 곳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하던 여한이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른 갈증이 느껴졌다. 연구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나도 저들과 같이 되고 싶어. 나도 이야기를 쓰고 싶고, 붓을 쥐고 싶어. 그림이 가득한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차선의 불만족을 느꼈다.
전시장에서 많은 시간과 돈을 쓴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미술사를 배우면서 적어도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가 되는 데는 자격이 따로 필요 없다는 신념 하나는 챙겼으니까. 뒤늦은 사람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졸업논문을 쓸 때 비로소 결정했다. 난 분석할 팔자가 못될 것 같다. 교수님, 모범생은 그른 것 같아요. 저 예술을 하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요.
때문에 난 이것만으로 해와의 연애를 시간이 지나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을 거다. 아니, 기억을 해냈어도 해보고 싶은 것에 뛰어들지 못했을 거다. 자극을 받아 에잇 하고 들어와 버리진 못했겠지. 지금도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난 널 뛰어넘을 거다. 너와 함께 걸을 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른 분야일지언정 예술을 할 거다. 너 같이 자유롭게 선을 긋지 못해도 나에겐 정갈한 선이 있고, 독특함은 없어도 힘이 있을 거다. 드디어 나도 논리 정연한 글쓰기보다 은유와 대사가 좋아졌거든.
생각났을 때, 기억해냈을 때 해보고 싶다면 다시 해보면 된다. 그래도 괜찮다. 그럴 자격 충분히 있다. 그걸 네 덕에 조금 더 일찍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