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로맨스 소설이 끝나고 에필로그를 읽는 걸 좋아한다. 온갖 사건들을 끝마치곤 주인공들이 안정을 찾아서 각자의 행복을 좇는 잔잔한 모습이 좋다. 나의 연애도 글로 엮고 있지만 7년이란 햇수의 단 하나의 로맨스도 완결을 맺지 못한 채 지금도 흘러 흘러 에필로그 같은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2권이 나올 때, 나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두 번째 연애를 말하게 될지, 동거 혹은 결혼과 2세 같은 또 다른 세계의 로맨스를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연애를 글로 써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던 건 5년 정도 해와 함께 했을 무렵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분리하기 힘들었고, 그것이 성장인지 어그러짐인지 조금은 불안했다. 내 인생이 사랑이란 감정으로 휘둘리는 건 좀 무서우니까. 어느 심정으론 매일매일 변하는 사랑의 감정을 글로 쓰는 행위가 스스로 흑역사를 남기는 것도 같아 고민스러웠지만.. 그만큼 기록해야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멀리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 멈추진 않으려 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던 와글와글한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자꾸만 시선이 멈췄던 것처럼 인연은 설명할 수 없는 기류로 이루어진다. 붉은 실이란 로맨스적인 미신을 괜히 믿는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처음엔 네 사랑이 터질 듯 가슴을 지배해 스스로도 낯설어 당황스럽기도 했다가, 중간엔 내 사랑이 점점 온도를 높여가 어느새 뜨거워진 몸에 몸살을 앓기도 했다. 펑하고 터지고 나서야 정신이 든 너는 목탁이라도 두들겨야 할 것처럼 놀랍도록 매사에 무던해졌고, 푸스슥 미열마저 내리고 정상체온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열이 오를까 고양이처럼 경계했다. 그럼에도 나는, 너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생각이 네게, 내게 멈춘다.
사랑의 모습과 온도는 결코 같지 않은 형태로 각자에 맞춰 변화한다. 그렇기에 계절이 반복해서 지날수록 서로의 외견은 익숙해도 서로의 사랑은 낯설다. 서로의 옷장 속 재킷, 바지, 셔츠, 롱 패딩, 파자마까지 낱낱이 알고 있어도 어느 날의 스쳐가는 네 표정은 처음 보는 이의 것처럼 낯설고, 설레고, 두렵다. 그렇기에 이리 사랑에 대해 서술하고 기록하는 것은 하면 할수록 부족하고 부족하며 부족하다 생각한다.
나의 긴 연애는 사랑을 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느끼는데 의미가 있었다. 이것이 돈과 시간과 감정을 쏟아도 얻기 힘든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경험이구나 새삼 느낀다. 연애를 시작할 땐 연애초라 하는데 연애 중, 연애후반이 있는가 목차를 짜면서 고민했다. 분기를 나누자니 현재 진행 중인데 애매하고, 그래서 ‘일상으로, 세상으로’로 나눴다. 타인이 나의 일상으로 들어와 연인이 되어 나를 변화시키고, 함께 세상으로 나가 성장하길 바라면서. 내 변화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길 바라면서. 한편으론 무섭지만 값진 이야기. 그게 내가 주인공인 로맨스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긴 연애를 해온 내게 솔로몬의 역할로 연애상담 자리에 초청해주지만 항상 참 어렵다. 옳고 그름의 싸움은 “저런.”이란 말로 답하고, 연애 중에 나 자신을 굳건히 지키는 방법에 대해선 아무래도 ‘나와 너’가 제일이라 답한다. 연인을 타박하면서도 ‘우리’란 말이 익숙하겠지만 ‘나와 너’라고 타인이란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 참 어려운 일이지만 연인을 나라는 회사의 대주주라고 여기면서 지내면 적당한 것 같다. 많은 지분을 떼어준 대주주. 그러면서 나의 지분을 굳건히 챙기고 비리가 있지는 않은지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대처하는 것. 사실 경제 무식자이지만.. 그렇다.
나는 사랑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통해 성숙해지기 위해선 기존의 미성숙한 행동들을 받아주며 기다려줄 상대가 필요하다. 해와 나는 결이 맞아 서로가 상대가 되어줬지만 진심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이 있다면 타인을 나의 일상으로, 세상으로 들여보내 줄 때 신중해야지, 결심해본다. 마음이 동하는 건 한 순간이니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