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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은 Dec 29. 2022

자리를 찾아서


  버지니아 울프는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세기에 살았던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20대를 보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자리를 찾기까지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곳곳을 쏘다니거나 대기실이나 사무실 한켠에 채 풀지도 않은 가방을 얌전히 내려놓았다가 재빨리 챙겨서 일어나기 일쑤였다.     

 

  책상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질감으로만 연약한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다음 개편 때는 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묘하게 차별받는 불쾌한 기분, 저 울타리 안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는 불편함. 언어로 풀어내면 명징하게 선명해지는 두려움이 거뭇한 안개처럼 나의 청춘을 잠식했다.      


  조직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상이 생기고, 명함이 나오고, 선배와 후배가 있고 분장실과 의상실이 갖춰진 환경에서도 자리를 찾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했다. 늘 조직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주어진 역할의 중요도는 어느 정도인지 저울질하고 가늠하기 바빴다.      


  중요한 자리에 서게 되면 책임에 짓눌려 신음하거나 언제까지 이 자리에 설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다. 없는 말을 만들어내 곤란하게 하거나, 질투를 선의로 포장한 의뭉스러운 말을 듣고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주어진 자리가 적고, 선택하는 쪽이 아니라 선택 받는 입장에 선다는 것. 방송은 그런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자리를 찾고 있다. 수식이나 설명이 없어도 내가 나로 온전하다고 느껴질 때가 되면 그만둘 수 있을까. 자리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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