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에 대한 찬사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상이 있을 것이다. 나는 87이라는 숫자가 생각난다. 87년생이거니와 87점짜리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 인간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87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제법 후한 점수라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박한 점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87점이라는 애매한 점수를 산출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매사 지독한 노력형 인간. 하지만 노력으로 얻은 결과물은 겨우 중간, 혹은 중간보다 조금 낫다. 그렇다고 낙제점을 줄 정도는 아니고, 아주 우수한 성취라며 박수를 받을 수준에도 못 미친다.
‘87점 짜리 인간’이라는 정체성과 열등감은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절친한 친구에게는 내 인생에 홈런이 없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낸 게 없는 것 같다는 말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며 때로는 작은 언덕, 야트막한 산, 깎아지를 듯 높은 절벽 등 넘어야 할 장애물처럼 느껴지는 과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마다 분명 최선을 다했을텐데 100점 만점에 100점을 줄 정도로 시원스럽게 그 과정을 넘어온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깜냥이 부족한데 도전했을 수도 있고, 엉덩이 붙이고 노력한 시간이 적었을 수도 있다. 종종 이런 회한에 젖으면 기분이 우울해지곤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87점이라는 숫자를 긍정적으로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100점 짜리 성취와 30점짜리 낙제보다는 그만저만한 성적표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특출난 것은 없지만 중간 이상은 되는 재능과 재주, 노력의 역치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 거니까. 대단한 한가지는 없지만, 작고 야트막한 것들을 모으면 나름대로 쓸만하지 않을까. 고만고만, 이만저만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