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경은 Jul 22. 2022

좌충우돌탐험가

-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부딪히며 


  좌충우돌탐험가. 스스로를 설명하고 소개해야할 때 선택하는 단어다. 정확히 스물 세 살 때 처음 생각해낸 단어인데, 일곱 음절을 복기할 때마다 좌충우돌 해야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20대는 빛나는 시기였으리라. 하지만 나에게는 캄캄한 어둠 같은 시간이었다. 20대를 훌쩍 지나온 지금도 20대에 만난 친구들 앞에 서면 작아진다. 그때의 내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미간과 어깨에 지친 흔적과 고민을 잔뜩 얹고 다녔다. 앓는 소리를 자주 했고, 늘 여유가 없었다.      


  핑계를 대자면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도, 소속도, 할 일도 없는 백수가 되는 게 무서웠다. 아버지는 나의 꿈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상태였는데, 이는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바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나, 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들 앞에서 뚝심 하나로 버티기에는 힘든 날들이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매달리느라 20대의 나는 시들어갔다.     


  매일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만나 연습을 하고, 시험을 보러 다녔다. 서울이 삶의 반경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는데, 꿈은 경계를 허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무서울 게 없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에 몸집만한 짐을 들고 고속버스,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시험 기회를 얻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것도 비일비재했으니까. 한번은 답답해서 인사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열에 한 명은 따뜻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시도를 반복하며 일을 시작하게 됐다.      


  대학에 다니면서 게임방송 리포터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방송의 무게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졸업 후 손바닥 만한 마이크를 들고 다니면서 진짜 방송의 무게감을 알게 됐다. 해내야 한다는 의지는 숫기 없는 성격도 바꾸어놓았다. 리포터를 하며 다양한 상황에 놓였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하고, 요란스러운 감탄을 내뱉으며 음식을 먹었다. 발랄함을 만들어내기 위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수 십번 연습을 했다.      


  제일 어려운 건 초등학생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쓸만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게 힘들었다. 녹화 버튼이 눌리기 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충분히 설명하고, 단답형으로 대답하면 수차례 질문을 던져 쓸만한 대답을 들어야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려하고 능력있는 리포터는 아니었다. 화면 밖으로 에너지를 뽐내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능숙한 순발력을 뽐내는 재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실함은 자신이 있었다. 우직한 성실함을 좋게 평가해준 감독님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 나레이션 녹음이었다.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아나운싱도 배웠다. 학원에서 배운 것과는 또 달랐다. 소리를 풍성하게 내는 법,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 편안한 목소리를 내는 법까지. 돌이켜보면 열심히 하는 것은 자신있었던 20대의 나에게 선물 같은 인연이 많았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시험은 꾸준히 보러 다녔다. 일하면서도 연습과 공부는 계속했다. 염원하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앵커도 됐다. 방송 인생 10년.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곱씹었던 목표는 이뤘다. 좌충우돌 10년을 보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애쓰고, 무리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됐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무리한 만큼 나의 세계는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좌충우돌하며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다. 빛나는 청춘을 부딪히고 또 부딪히며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좌충우돌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싶은 밤이다.                                                                                                                                                                                                     

이전 02화 첫 무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