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정함'은 내 인생의 키워드가 되었나
어쩌다 상장을 받아와 자랑스럽게 내밀면 아버지는 말했다. 악수 한 번 해. 투박한 칭찬이자 애정표현이었다.
자상함과는 대척점에 있는 아버지다운 말이었다. 그 말이 좋았다. 그을린 손을 내밀며 머쓱한 듯 웃는 표정이 미처 말에 담지 못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늘 갈망했던 것 같다. 보드랍고 따뜻한 애정을.
아버지의 형제들도 표현에 인색했다. '악수 한 번'이면 격려와 응원이 전달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명절이면 집안 곳곳에 전에 없던 활기가 돌았으나 무언의 규칙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큰 소리로 떠들거나 마음껏 웃으면 눈총을 받았다. 흔히 주고 받는 안부인사는 '반에서 몇 등 하냐'로 갈음됐다. 친척들을 만나 어색하게 웃기만 해야하는 명절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신씨 집안 사람들은 늘 미간에 힘을 주고 입꼬리를 앙 다물고 있구나. 유년기 시절, 일찍이 알았다.
타고난 기질 탓인지 가정 환경 탓인지 '신씨'인 나도 마찬가지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늘 아쉽다는 표를 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시어른들께 미움을 사지 않을지 우려했다. 아버지의 우려는 걱정의 크기만큼 발현되지는 않았으나 크게 벗어나지도 않은 모양새다. 늘 어색하고 적지 않게 뻣뻣한 사람으로 어른이 됐다.
다정함이 늘 목마른 탓일까. 나는 다정함에 민감하다. 다정한 말투에 마음이 놓이고 투박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다. 때로는 따뜻한 눈빛, 작은 친절에 크게 감동하고, 서늘한 태도에 곱씹어 아프기도 하다. 그만큼 나도 다정을 다짐한다. 다정함을 다짐하는 것은 나를 다듬는 것. 내 마음, 타인에게 전하는 배려를 다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