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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은 Jul 25. 2024

어깨 펴고 다니세요

버지니아 울프는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세기에 살았던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20대를 보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자리를 찾기까지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곳곳을 쏘다니거나 대기실이나 사무실 한켠에 채 풀지도 않은 가방을 얌전히 내려놓았다가 재빨리 챙겨서 일어나기 일쑤였다.    

  

  책상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질감으로만 연약한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다음 개편 때는 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묘하게 차별받는 불쾌한 기분, 저 울타리 안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는 불편함. 언어로 풀어내면 명징하게 선명해지는 두려움이 거뭇한 안개처럼 나의 청춘을 잠식했다.   

   

  조직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상이 생기고, 명함이 나오고, 선배와 후배가 있고 분장실과 의상실이 갖춰진 환경에서도 자리를 찾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했다. 늘 조직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주어진 역할의 중요도는 어느 정도인지 저울질하고 가늠하기 바빴다.      


  생방송 뉴스를 맡게 됐다. 꿈꾸던 자리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자리에 서게 되니 책임에 짓눌렸다. 또 언제까지 이 자리에 설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다. 자리가 적고, 선택하는 쪽이 아니라 선택 받는 입장에 선다는 것. 눈썹 모양이 어떻다느니, 표정이 어떻다느니 끊임없이 평가를 받는 것. 때로는 날 선 언어에 무방비하게 상처받곤 하는 것. 방송은 그런 것이었다.      


  염원하던 일을 시작했지만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작은 방송국에서 2년 가량 생방송 뉴스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었고, 이직한 후 3년간 취재를 하고 기사도 썼다. 방송 출연도 자주 했던 터. 하지만 앵커로 데스크에 앉는 것은 달랐다. 뉴스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늘 상사의 눈치를 살폈다. 모니터 요원의 보고서가 메일로 전달되는 매주 월요일이면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고칠 점만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늘 일정한 무게의 우울과 불안을 어깨에 매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날도 터벅터벅 복도를 걷고 있었나보다. 친분을 쌓을 기회가 없어 인사만 주고받던 선배가 내 팔을 슬그머니 잡았다.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복도 끝으로 나를 데려갔다. 다정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깨 펴고 다니세요"


  그녀는 이제 막 생방송 뉴스 시험대에 오른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다정함과 걱정이 섞인 저 한마디,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버티라는 부연이었다. 


  여전히 나는 유약한 어른이다. 사람들의 평가에 예민하고 휘둘리고 상처도 받는다. 조금 더 나아진 점이 있다면 나도 이제는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 용기가 있다는거다. 


  요즘도 종종 그녀의 다정하고도 단호한 눈빛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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