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후, 부엌과 친해졌다. 살림에 정을 붙이지 못해 좀처럼 인연이 없던 부엌. 식사는 챙기는 게 아니라 겨우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터라 요리에도 취미가 없었다. 재주없는 솜씨가 어디 가려나. 지금도 요리보다는 조리에 가까운 실력이지만 아이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미루거나 외면할 수 없는 일. 건강한 음식을 먹이는 것, 편식 없이 음식을 먹게 하는 것, 스스로 밥을 먹는 것도 공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이가 태어난 후에야 알았다.
아이는 2.9kg으로 태어났다. 아담했지만 건강했다. 그런데 나란히 누워있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유독 왜소해보였다. 모유를 좀처럼 먹지 않는 것도, 젖을 빠는 힘이 약한 것도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탓이라는 말을 들었다. 임신 기간 내내 마음껏 먹지 않은 나를 탓했다. 더 나아가 성년이 된 아이를 상상했다. 살을 빼겠다며 애쓰겠지. 소수점 한자리에 일희일비했던 엄마의 노력은 모르겠지. 나처럼.
우리 엄마는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건강에 정성을 쏟았다. 나는 엄마 덕분에 가공식품을 거의 먹지 않고 컸다. 늘 제철 한식으로 밥상을 차려줬다. 끊임없이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먹거리에 신경을 썼다. 출근하기 전에 늘 김밥이며 유부초밥을 만들어놨다. 돈까스며 피자, 햄버거까지 손수 만들어줬다.
라면과 탄산음료는 집 안에서 금기에 가까웠다. 엄마는 특히 컵라면을 질색했다. 한없이 졸라 겨우 먹게 되는 날에도 엄마는 컵라면을 냄비에 따로 끓여줬다. 간식을 양껏 먹지 못하는게 불만이었지만, 엄마는 그 틈까지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엄마표 간식으로. 엄마의 음식들은 나를 살찌우고, 키우고,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성인이 되어서야 엄마의 음식들이 나의 자부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려 애썼던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나의 자부였다. 나를 채워준 엄마의 다정한 요리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