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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Sep 26.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68 유적과 함께 살아가다


  트램인 줄 알고 탔더니 그냥 굴절 버스였다. 게다가 오늘의 목적지 헤스타우 라도레스 광장 반대로 가는 것도 몰랐다. 사실은 이름이 너무 길어서 기사에게 묻기도 전에 일단 탔고 버스가 출발해버렸다. 포르투갈어를 몰라서만 문제는 아니었던 듯. 거의 꽃할매, 할배 수준의 반응 속도였다. 한참 가도 안 나오고 자꾸 구시가를 빠져나가는 것 같아 옆 사람에게 묻고 나서야 바로 내렸다. 다시 길을 건너 반대편 방향으로 돌아가는 같은 번호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차 피 느린 여행 중이니 길을 잃는다고 뭐 어찌 되는 건 아니니까 대신 변명해준다.


  버스에서 내려서 언덕 위 상 조르제 성으로 간다. 알파마 지구(리스본 시내는 3개의 지구로 나뉘어 있다)를 지나서 성으로 가는 길은 얼마 전 알고 지내던 언니랑 또 하루는 친구랑 올랐던 혜화동 낙산사 가는 길을 닮았다. 언덕에 사는 서민들의 살림살이나 집 모양새들은 국경을 초월해서 어딘가 닮아있다. 비좁은 공간들을 이용해서 오밀조밀 빨래도 널고 꽃도 키우고 화분도 걸고 계단도 내고 입구도 만들고 자투리 공간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이 그들 삶에 문제를 일으킬 만도 한데 오히려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듯 노래를 부르며 환영하고 전망대를 내어주고 그들의 전통 먹을거리와 수공예품, 지역 생산품들을 판매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관광객으로 잠깐 구경한 골목에서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이 오랫동안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는 돼 보였다.


  오랫동안 포르투갈 왕궁이었다는 상 조르제 성은 예상보다 초라했다. 차라리 왕궁 이후 요새와 감옥으로 쓰인 게 더 맞는 듯하다. 높은 벽들과 터만 남아있었지만 리스본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만은 제왕적이었다. 이제 이곳은 리스본 뿐만 아니라 테주강 멀리 대서양까지 내려다보고, 황혼과 도시 야경까지 즐기는 시민들의 쉼터이자 여행자들의 필수 관광지가 되었나 보다. 여행안내서에선 상 조르제 성에서 황혼과 리스본 야경을 꼭 보라고 권했지만 밝은 낮에 올라와 보니 바다로 탁 트인 정면부터 200도 이상의 전경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도시의 지붕 대부분이 밝은 주홍색으로 덮여 있어서 파란 하늘과도 잘 어울렸고 저물어 가는 노을 속에서 더욱 돋보일 것 같았다. 성벽의 타워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사람들의 발자국 힘에 눌리고 눌려 살짝 가운데만 가라앉아 있었다. 그냥 밟고 지나간 것 뿐인데 수백, 수천, 수만의 발자국은 돌을 서서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누르고 있었던 거다. 절집의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물도 댓돌에 구멍을 뚫으니 끊이지 않는다면 변화가 오는 것이다.


  스페인의 거창한 유적지들에 눈이 호강해서인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 입장료 8.5유로가 아까워지려던 차에 나무 위에서 공작새 무리를 발견했다. 우아한 모습과 달리 ‘께에엑, 께에엑’ 소리가 귀청 떨어지게 크다. 아이들이나 어른 모두 유적지보다 한두 마리가 아닌 한 무리의 공작새에 더 관심을 보인다. 언덕 꼭대기에 올랐으니 내려온다. 리스본의 유명한 생선 메뉴들(대구, 정어리) 냄새가 여기저기서 진동한다. 유적지 안이라 해도 카페가 성업 중이다. 성곽 옆은 바나 카페가 되고 테라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유럽인들이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스타일인 것 같다. 죽어 있는 박제로 모셔두는 유물, 유적지가 아니라 자손들이 자리를 지키고 거기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실제 삶에 들어와 같이 나이 들며 늙어가고 있다.


  요즘 세 끼를 빼놓지 않고 잘 먹는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니 기죽지 않겠다는 핑계로 숙소에서 스테이크도 해먹고 냄비 밥 해서 눌은밥도 먹고, 달걀 프라이까지 흡입하곤 한다. 뭔가 불만이나 스트레스가 있나?, ‘홈씩(homesick)’인가?, 일시적인 생리 증후군인가? 근데 솔직히 둘 이상 다니는 여행자들을 나도 모르 게 힐끗거리고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홀로 다니는 여행의 장점을 모두 누리고 나니 슬슬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대부분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게 자연의 이치니 내 감정이나 경험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터. 기울어지는 내 맘을 추슬러 나머지 구경도 완료하자 모드로 급수습.


  리스본에 1755년에 대지진이 있었고 그때 대부분의 건물은 무너지거나 파손됐지만 대성당은 그대로 생존해서 옛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웅장하게 서 있는 바로크 양식 그대로의 대성당은 늦은 오후 햇볕 속에서 우직한 네모 상자 같은 모습으로 당당해 보였다. 무료입장이라 사람들이 꽤 들락날락한다. 교회 앞에는 항상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만에 구경에 앞서 기도 먼저. 여기까지 함께 해주심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인도하심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또 나를 먼저 돌봐달라 기도했다. 머리 위 높은 돔이 작은 하늘처럼 밝다. 이렇게 높고 너른 교회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당당하게 펼쳐지면 좋겠다. 내 안의 그 몫도 깨닫게 해주시길 기도하며 터덜터덜 걸어 나와서 노란 트램에 올라탔다. 놀이동산 기구라도 탄 느낌. 덜덜 거리며 간다. 트램을 연결한 하늘 위 전선들이 산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공존을 위한 배려로 본다면 미의 기준을 바꾸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지진에도 살아남아 당당한 대성당(SE 세)과 달리 외부 껍데기는 잔존하고 내부와 지붕이 무너져 버린 카르무 성당. 전체 사이즈는 대성당보다 커 보였지만 내진설계는 뒤처졌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폐장 시간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만 봐야 했다. 껍데기라도 남아 여전히 대지진을 증명하고 있으니 깊은 상처가 흉터로 남아 살아있는 교훈이 된 셈이다. 성당 옆으로 이어진 테라스는 저 높이 상 조르제 성과 그 아래 언덕 마을을 구경하기 좋은 높이였다. 게다가 에펠탑을 디자인한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70미터 생주스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같은 높이에 있었다. 아름다운 리스본을 조망하려는 상업적인(?) 또는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노력이 여기저기 보였다. 철 구조물 엘리베이터는 다분히 상업적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건축물과 삶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볼썽사나운 이웃은 아니었다. 그 아래는 리스본에서 가장 핫하다는 아우구스타 패션 쇼핑거리다. 나랑 별 상관없는, 지나는 길 정도지만 다른 이들에겐 득템의 장소라고들 한다. 나는 갑자기 홈씩(homesick) 같은 미열을 느끼며 다시 동물적으로 푸짐한 음식을 처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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