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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쌍 Jul 04. 2017

"땅"에서 식물을 키워 "먹다."

소소한 제주 시골 일상 #2

시골로 이사 온 뒤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열 평 남짓한 텃밭 공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상추와 치커리, 쑥갓, 부추, 파, 청양고추, 토마토, 가지 등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을 심었다. 텃밭을 가꿔보니 우리가 도시에서 조금의 위안을 얻고자 화분에 식물을 박제하는 것과 땅을 일궈 그곳에 씨와 모종을 심고 이들을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다른 층위의 행위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도시에서 자취할 때에도 집에서 밥 해 먹는 걸 좋아했기에 자주 마트에서 이런저런 채소들을 구입했었다. 잘 손질된 상태로 소분 포장된 채소들. 990원어치씩 고추니 상추니 심지어 무까지 잘라 포장되어 동내 대기업 체인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런 채소를 구입할 당시 나는 그것들이 흙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상상을 쉽게 하지 못했었다. 당연히 식물은 흙에서 자라겠지만 나에게 그것들은 마치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처럼 느껴졌다. 야채들은 깨끗하고 보기 좋았지만 그들이 태어난 흙과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텃밭을 점령하고 있던 오래된 덩굴과 돼지감자들을 뽑아내고 땅을 호미와 곡괭이로 갈아준 뒤 구획을 나누고 이랑을 만들어 오일장에서 사 온 모종들을 가지런히 심었다. 길게 자라난다는 고추와 토마토에게는 나무로 받침대도 만들어 주었다.

밭을 일궈낼 때는 덥고 힘이 들었지만 심고 나서는 오히려 이 정도의 노력만으로 작물들이 자라나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흙에서 무엇인가를 키워서 먹는 행위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그것 자체를 굉장히 어렵고 지나치게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매일 우리가 먹는 것들은 누군가 키워낸 것이고 먹는 것이 일상이라면 그 반대도 일상처럼 가까운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조경을 전공한 지인에게 텃밭을 하고 있고 작물들을 잘 "키우고"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는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주고 있는 것이라 대꾸했다. 그리고 키운다는 말을 하려면 내가 아니라 "흙"이 키우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처럼 텃밭에 심긴 작물들은 작은 내 도움을 받으며 잘도 스스로 자라났다. 우리는 가끔 잡초를 뽑아주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물을 주고 먹었던 음식물이 남으면 주변에 구덩이를 파묻어주는 일 정도를 했다. 

그 사이 도시에만 살던 우리 부부가 잘 몰랐던 것들을 시골분들이 많이 알려 주셨다. 고추와 토마토가 크고 넓게 자라기에 좋아만 했는데 아랫부분의 잎을 따줘야만 열매를 크게 잘 맺는다는 것도 알았고, 복합비료를 쓰는 영농방식과 EM과 퇴비를 사용하는 영농방식의 차이도 전국 여성농민회 소속의 전 부녀회장님을 통해 배웠다. 

텃밭에 들어갈 때마다 손톱에 흙이 잔뜩 끼고 신발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텃밭과 친해졌다.

며칠 전 집에 친구들이 놀러와 음식을 하려고 텃밭에서 채소들을 수확했다. 상추는 벌써 여러 번 따먹고도 다시 잎사귀가 돋아났다. 치커리는 가게 반찬으로 몇 번을 나가고 지인에게 선물했음에도 처치 곤란할 정도로 무성하다. 고추는 몇 개 달리지 않았지만 고춧잎은 풍성해 딸 수 있었고 쪽파로 의심했던 대파도 제법 굵어졌다. 우리가 들인 노력에 비해 텃밭은 너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

저녁상에 고춧잎은 잘 손질해서 살짝 데친 뒤 꼭 짜서 갖은 양념으로 버무렸고 치커리와 상추는 겉절이 양념을 해서 무쳤다. 파와 몇 개 안 되는 고추는 청국장에 들어갔고 쌈채소들도 모두 우리 텃밭에서 자란 것들이다. 김치는 아래 동네 삼촌이 주셨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텃밭에서 났고 우리 동네에서 길러졌다. 무척이나 푸근하고 다정한 맛이 났다. 

자립이나 연대 같은 말을 들을 때 종종 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싫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아마도 그건 내 안에 있던 불안감이나 부채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조그만 텃밭을 하며 우리는 조금 자립했고 조금 흙에 가까워졌다. 물론 아주 조금이다. 그리고 난 조금 자립과 연대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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