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rt stop
"가장 좋은 사람은
고을 사람 중
좋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나쁜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 공자
회사를 다닐 때였다. 갑자기 팀원 중 한 명이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말을 걸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고, 복도에서 인사를 해도 무시하고 지나갔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서로 마주 봐야 할 일이 생기면 눈살을 찌푸렸다. 그 팀원이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몸으로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네가 싫어. 너의 모든 게 토 나와.’
나는 지하철에 앉았을 때 승객들에게 음악소리가 들릴까 봐 세 번씩 체크한다.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싫은 소리도 못한다. 이렇게 배려가 몸에 밴 나를 왜 싫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싫어하냐고 물어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의 독한 말이 칼이 되어 심장을 가를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고통이 바닥에 흥건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온 신경을 쏟았다.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까 궁리했다. 내 어떤 점이 부족해서 그러는 건지, 행동 하나하나 분석하기도 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항상 그랬다. 초등학생에서 회사원이 될 때까지 적어도 한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이 나를 싫어했다. 이상했다. 그들을 신경 쓰면 쓸수록, 그에 화답하듯 나를 싫어해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평생 궁리해왔다. 사랑받지 못했을 때는 내 단점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사랑해 주는 사람도 항상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하소연만 했다.
돌아보면 나는 미움받고 싶은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에서 아래 문장을 읽은 다음부터 싫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언젠가 나는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 존에게 그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아버지는 절대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
상처 줄 사람들은 내가 불안해해도, 걱정해도, 저항해도 준다. 어차피 그럴 거라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까 나도 책에 나온 것처럼, 싫은 사람에게 나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내어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싫은 사람이 오랫동안 신경 쓰일 때가 있다. 당연하다. 수 십 년을 그러고 살았으니 한 번에 바뀔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에서 며칠로, 며칠에서 하루로, 하루에서 몇 시간으로 줄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나처럼 좋은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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