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래 Oct 18. 2022

울고 있는 거울 속의 당신에게,

♪ Elevator

공기와 사랑과 아픔이 모여,

한숨과 몸짓과 노래를 자아내는 너.


예전의 나처럼 아파하고 있다면, 찾아줘.

거울 속 미소 짓는 행복한 너를.




그날은 모던 바에서 60대 아저씨에게 ‘오빠’라 부르며 히죽거린 날도 아니었고, 모든 카드가 한도 초과인 게 쪽팔려서 양주병을 벽에 던지다 연행된 ‘오빠’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돌아간 날도 아니었다.

퀴퀴한 주방에서 한치를 굽다가 퇴근하는 어느 겨울날. 3시 20분.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새벽이었다. 축축한 이슬 냄새가 나는 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그날은 분홍과 파랑과 노랑, 색색의 장미가 프린트되어 예뻤으나, 걸을 때마다 속옷까지 보일 정도로 말려 올라가는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그 위에 포대자루 같은 외투를 걸쳤다.

빠른 경로로 집에 가려면 캄캄하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다. 보폭이 빠르면 3분도 안 되어 지나갈 수 있는 일자 골목길이었다.


보통 집에 가는 길에 아무도 만나지 않는데, 그날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전봇대에 등을 대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로등이 위에 달려있는 전봇대여서 그런지, 남자는 주황빛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극배우 같았다.

그날, 남자는 지나가는 나를 오래 쳐다봤다. 학창 시절 횡단보도를 건너다 남학생 셋이 “쟤 얼굴 오크 같다. 피부 봤어? 더럽다.”라는 말을 쑥덕거릴 때부터, 사람들과 눈 맞추며 대화하는 것이 버거웠던 나는, 외투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남자의 실루엣을 훑어보고는 서둘러 지나쳤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쓱-쓱- 바지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겁이 났다. 캄캄한 골목길은 짧았다. 왼쪽으로만 돌면 가로등이 많았고 집이 코앞이었으며, 평소 달리기에 자신 있었다. 열심히 뛴 덕에 캄캄한 골목길은 끝이 보였다. 주황빛 가로등이 곳곳에 있는, 아까 지나온 길보다 더 환하고 큰 골목길이 보였다. 나는 왼쪽으로 돌면서 뛰었다.

하지만 남자도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나 보다. 귀에 그 사람의 숨이 닿았다. 그는 나를 뒤에서 껴안고는, 나의 가슴과 성기로 추측되는 곳을 아무렇게나 만졌다. 자기도 어디를 만지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서툴렀다. 성기를 만지고 싶은데 하도 발버둥 치니까 허벅지 안쪽만 휘젓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릴 적 태권도장에서 배운 호신술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소리만 질러 댔다. 주황빛 가로등은 달처럼 환하고, 벽돌집들과 집 앞을 지키는 차들은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었지만, 빽빽한 인간의 숲은 고요했다. 골목길이 끝날 때 맞닥뜨리는 호프집의 맥주와 치킨 냄새도, 빨간 OPEN 글씨와 파란 테두리의 네온사인도 잠들고 없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없었다. 남자를 제압할 수 없어, 만지지 않도록 온몸을 달팽이처럼 둥글게 말며 주저앉았다.


남자는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줄행랑을 쳤다. 집에서 열 걸음만 걸으면 도착하는 그곳에서, 남자가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을 부숴 놓고, 자기 짐은 소중해 가방을 덜렁덜렁 들고뛰는 꼴이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한참을 오열하다, 집에 들어갔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몸이 더럽혀졌으니까 피가 날 정도로 때를 밀어 그가 닿은 부분을 지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회피형 인간이었다. 이 모든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씻지도 않은 채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잠든 아빠가 혹시 깰까 봐 소리 없이 베개를 적셨다. 그러다가 걱정이 스쳤다.

‘이 알바는 그만둬야겠지. 그럼 앞으로 생활비는 어쩌지?’

방금 당한 일보다 앞으로의 생활이 더 걱정되는 것을 보면, 나는 회복력이 좋은 사람인가 보다. 아니면 이미 산산조각인 삶이어서 초보 범죄자가 부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었나.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여드름 하나가 크게 느껴지지만, 현무암처럼 군데군데 구멍 난 피부에 하나 둘 뭐가 나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닌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장미가 잔뜩 그려진 그날의 미니스커트부터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연인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이런 일을 당했으니 경찰서에 가겠다고 말했다.

“괜찮아? 경찰서 같이 가줄까?”

그는 무섭도록 침착했다. 내가 당했던 그것은 벌써 그의 사건 파일 중 하나에 불과한 듯했다. 그와 통화하니 이 일은 별일 아닌 것 같았다. 화가 나, 그 변태의 면상을 부수고 싶어 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혼자 갈 수 있다 했고, 그는 알겠다며 통화를 마무리하고 회사에서 하던 일을 이어했다.


혼자 경찰서에 들어가 신고하고 며칠 뒤, 경찰관은 내가 당한 그 골목에 CCTV가 없다 했다. 큰길에 있는 CCTV에 뒤통수만 찍힌 그 남자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화질 개선에 노력은 해보겠지만 특정 짓기 힘들 거라 했다. 그 사람을 잡고 싶다는 결의는 경찰관의 몇 마디에 쉽게 무너졌고, 유야무야 사건은 종결되었다.


몇 년 뒤, 그날 그렇게 많은 차가 있었는데, 왜 블랙박스를 볼 생각은 안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놈은 나 때문에 이 길로 각성하여 변태의 정점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 희생된 여성들이 더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놓친 것을 후회한다. 그 사람의 정수리에 사회의 철퇴를 꽂아줬어야 했다. 나 같은 피해자를 위해, 아니면 그 변태가 더 이상 나쁜 길로 흘러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나를 혐오했다.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은 불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공적으로 망가지고 싶고 성공했다. 나는 나를 돕지 않았다. 나를 돕지 않는데 타인이 발 벗고 나서봤자 얼마나 나서겠는가. 스스로를 돕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

예전에는 여자들의 미니스커트나 가슴골이 보이는 복장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 덕분에, “짧은 치마를 입지 말았어야지.” 이런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게 되었다. 그 말은 마치, 범인이 집에서 아무거나 잡히는 칼을 휘둘러 배를 찔린 피해자에게 “날카로운 칼을 집에 두지 말았어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이런 사건들로 가치관이 바뀌었던 경우도 있었고, 몇 시간 만에 바뀐 적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좋게 말하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다.

그래서 올해 32살인 나의 필명은 ‘나래32’이다. 만약 내년에 책을 내면 나래33일 것이며, 10년 뒤에 책을 내면 나래42일 것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꼭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관점이 바뀌기 때문이다.




나래29는 카페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르는 아줌마가 다가왔다.

“예수 믿으세요?”

그는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나는 모태신앙인이다. 12살에 친구가 교회에 가재서 따라가려는 나에게 아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빠는 나의 ‘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믿는 ‘무신론’이 진리라 여기고 살아왔다.


당시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나는 무신론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이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라는 내용에 공감하며 키득대곤 했다. 그런 내게 아줌마의 ‘예수’ 언급은 짜증 났다. 하지만 지인을 기다리느라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는 예수를 왜 믿으세요?”

아줌마의 다음 대답이 소름 끼쳤다.


“그건 믿는 게 아니라, 그냥 알게 돼요.”


버트런드 러셀은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냐 물으면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 가요.”라고 외칠 거라 했는데, 이 아줌마는 '그냥' 안다고 한다. 나는 아줌마의 대답을 듣고 말을 이을 의지를 잃었다. 그냥 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도 아직 시간을 더 때워야 했기에, 한 번 더 물었다.


“어떻게 아는데요?”

“항상요. 항상 예수님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돼요.”


갈수록 가관이었다. 나는 코웃음 쳤다. '지켜본다'는 관점조차 자기 뇌가 상상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의 함부로 믿어버리는 허술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나래32인 요즘은 믿기 시작했다. 깨닫던 깨닫지 않던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행복은 내 곁에 있다고. 슬프고 끔찍한 경험들 안에도,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있었다고 믿는다.


아줌마의 ‘신’이 나의 ‘행복’과 같은 것일까? 이걸 어떻게 믿었냐고 과거의 나처럼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도 그냥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 아줌마의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의 당신이 현재의 내가 되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당신이 된다.




ⓒ 조지 클루젠, <울고 있는 젊은이 Youth Mourning>

이전 10화 세상에 지친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