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der the starlight
너무나 아픈 순간이었어도, 기억할 때마다 괴로워도 좋으니까,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고화질로 간직하고 싶어.
사라지지 마.
당신은 기억력이 좋은 편인가?
내 친구 Y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한다. 10년도 더 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 한 번은, 엄마가 Y와 나에게 밥을 차려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랬어? 언제?”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내 뇌에는 추억만 빨아먹는 블랙홀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은 Y처럼, 아픈 과거가 선명해도 괜찮으니까 차라리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모든 기억이 사진처럼 떠오르는 능력의 주인공이 드라마에 나오면 부러웠다.
부족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쉬이 부족해지지 않나 보다.
다니던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아, 1학년 여름방학에 수능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백혈병이 재발한 엄마의 병상 옆에 앉아 모의고사를 풀고 있었다. 아빠가 퇴근하고 교대하기 위해 병원으로 왔다. 아빠는 오자마자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옆에 있을 거면 엄마 몸도 좀 닦아주고, 불편한 데는 없나 확인을 해야지.”
나는 잔소리하는 아빠가 짜증 나서, 같이 쏘아붙였다.
“해야 할 건 다 했는데 왜 그래!”
그때 누워있던 엄마는 이런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아파서 가족들이 고생하는구나. 공부해야 하는데, 퇴근하고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나는 짜증이 난 채, 엄마에게 인사를 대충 하고 집에 갔다.
조금 있다, 9시 즈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이랑 같이 택시 타고 병원에 와라. 서둘러라.”
“무슨 일인데.”
“와 보면 알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여태까지의 내 인생은 온실 속에서 자란 난초와 같았고, 앞으로는 그 온실 전체가 송두리째 사라질 것을.
아빠가 오라는 병실로 찾아갔다.
의사가 엄마에게 갑자기 뇌출혈이 왔다고, 심장도 기계가 도와주지 않으면 멈출 거라고 말했다. 지금은 뇌사나 다름없다고 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나랑 수다 떤 게 불과 3시간 전 일이다. 나는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메디컬 드라마를 보며 라면이나 먹을 줄 알았지, 이런 쪽으론 아는 게 없었다. 엄마는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일단 심장은 기계가 도와주고는 있지만 뛰기는 뛰는 거 아닌가, 그러면 눈을 뜰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다만 기도했다. 엄마가 눈을 뜰 수만 있다면 누구든 좋았다. 신이 있나 없나, 그런 딴지를 걸 여유가 없었다.
어른들은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외삼촌이 모두에게 말했다.
“엄마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니까, 이제 편히 쉬게 해 드리자.”
속에서 끈 하나가 툭 끊기는 소리가 났다. 그 얘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기적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당신의 삶이 기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에게는 병원비, 신체적 고통, 가족 간의 불화로 고통받는 이번 삶보다는,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던 것이 당신에게는 고통이었을까. 엄마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의사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라고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랑한다고, 하늘에서는 근심 없이 행복하기만 하라고 했다. 내 차례가 왔다. 병상에 팔을 걸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사랑해.”
내가 엄마의 귀에 대고 말을 하자,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가 들은 걸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궁금했다. 아직도 궁금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할 것이다.
이모는 눈물을 훔치며 한 마디 했다.
“마지막인데 네가 하고 싶은 얘기 여기서 다 해. 할 얘기 없어?”
대여섯 명이 엄마 주위를 두르고 서있었다. 뒤에는 간호사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내 우주가 뜯겨 나가는 이 와중에도, 내 얘기를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지 신경 쓰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할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고, 생명유지장치를 뗄 때까지 쭈뼛거리던 그게, 그게 나와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의사는 장치를 떼어냈고, 드라마에서나 듣던 삐-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사망 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디지털시계의 빨간 숫자, ‘00:49’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빠짐없이 불행했다.
그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와 9살에 단둘이 피자집에 앉아 식사했던 일, 12살에 화진포 물가를 따라 걷다가, 나무가 휠 정도의 강풍을 맞아 걸음을 떼지 못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렸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어떤 기억에서도 엄마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의 독사진도 없어서, 단체 사진을 확대하고 주변 배경을 편집하고 나서야, 그럴듯한 영정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사진 하나, 동영상 하나도 제대로 찍어 놓지 않았던 걸까.’
요즘은 이때 생긴 강박일 수도 있겠지만, 추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고 SNS에 올린다.
엄마의 목소리까지 잡아먹는 머릿속 블랙홀에게서 나의 시간들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인터넷에 기억들을 맡긴다. 나 대신 지켜 달라고.
과거는 모자이크처럼,
기억의 조각들이 모인 환상일지도 몰라.
카메라에 자꾸 과거를 가두는 건,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도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두려워서일까.
그와 헤어지는 날도 그랬다. 엄마의 목소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나라면, 이 사람도 잃어버릴 것이다.
아니, 잃어야 한다.
헤어지는 순간, 그와의 추억이 서둘러 박멸해야 하는 바퀴벌레가 된다. 그도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었고 서로 행복한 추억을 나눴지만, 지금의 연인을 위해서 철없을 적 기억으로 치부해야 한다.
그에 대한 기억도 엄마처럼 두루뭉술해지다 흩어질 걸 예감했던 나는, 눈동자를 렌즈 삼아 얼굴이라도 오래 간직하려 애썼다. 깜빡일 때마다 뒤엉키는 속눈썹, 왼 볼에 자리 잡은 점. 사소해 보였던 작은 부분까지 찬찬히 살폈다.
이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그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흐릿해진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그때 나의 시간을 사랑으로 채워준 당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한 내가 있는 거라고,
참...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