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래 Oct 11. 2022

스스로 만든 미로에 갇힌 당신에게,

♪ Stone Heart

브레이크를 밟는  안에서

앞으로 잠깐 쏠리는  당연해.

넘어지고 싶지 않을 때는 뒤쪽으로 힘을 주는 것처럼,


나쁜 습관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중에 잠깐 끌리는  당연해.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좋은 습관 쪽으로 힘을 내면 되는 거야.




어느 날 나는 미로를 만들었다. 출구에는 꿈을 모두 이룬 나를 세워 두고, 출발선에는 꾀죄죄한 내가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삑- 스톱워치의 숫자는 0에서 무한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고3,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출구가 보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쳤다. 재미없었고 재미없는 일을 꾸준히 하는 방법도 몰랐다. 꾀죄죄한 나는 한참을 주저앉았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누군가가 나 대신 눈앞의 벽을 부숴줬으면 하고 바랐다.

출구에 있는 나는 싫은 일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반드시 해 내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꾀죄죄한 나는 초라하다.


새벽에 일어나서 ‘계획표에 적어 놓은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쉴 때 잠깐 보겠다던 드라마로 일과를 마무리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이럴 때 당신은 쉬다가 일어나서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벽 앞에 선 고3의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벽에 대고 발길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를 찧으며 벽에 대고 소리쳤다.

“왜 나는 항상 이 모양이야, 왜!”

질책은 바위에 부딪치고는 반사되어, 소리쳤던 사람에게 돌아간다. 나는 소리 없는 벽에 대고 대답이 없다며 울분을 쏟아 냈다. 출구에 서 있는 내가 비웃었다. 독한 년이 되고 싶었는데, 그냥 게으른 년이었다.

이렇게 형편없는 내가 탈출할 수 있을까?


십수 년을 소리치다, 이윽고 목이 쉬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해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비난하기를 멈췄다.




미로에 고요가 깃들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낯선 음성이 울려 퍼졌다.


“선택해.”


고요한 마음에 파동이 일었다. 그 순간, 내가 처음 미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음에는 출구를, 꾀죄죄한 나를 만들었던 순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내가 이 미로의 '설계자'였다.


십수 년간 때리던 죄 없는 벽을 바라보았다.

‘여기다 대고 소리치는 게 출구를 찾는 데에 도움이 될까? 여태까지는 아니었다면, 이러는 게 다 무슨 소용이지?’

목표도 계획도 과정도 모두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벽에 대고 괴로워하는 나도, 지도에 의지해 탐험하는 나도, 출구에 서있는 나도 될 수 있었다. 심지어 미로 전체를 파괴할 힘까지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원망하던 벽을 미련 없이 떠났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도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십수 년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찾을 시간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허송세월 했을까? 어떻게 이 정도로 아무것도 못 해낼 수가 있지?’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도 지난날의 멍청한 내가 미웠다. 과거의 내가 생각날 때면 후회가 늪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이럴 때면 그 음성이 다시금 나타나 제지한다.


“선택해.”


지난 세월 동안 자책은 충분히 해봤다.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미로를 탈출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후회보다는 아래와 같은 정신승리를 선택한다.


'그때 했던 행동이 한심해 보여도 어딘가 쓸모 있는 구석이 있을 거야.'

'그때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면 무슨 마음인지 알잖아. 나는 그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을 만큼 그릇이 커진 거야.'

'그땐 선택하기로 마음만 먹었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걸 몰랐을 뿐이야. 이제는 다르게 살자.'




이제 나는 나를 용서할래.

나만은 나를 용서하기를 선택할래.


나는 벽에서 울부짖던 너를 용서할래.

나만은 너를 알아주기를 선택할래.


너를 힘들게 하는 그 일이 왜 생겼는지 불평하기보단,

감상평을 좋게 남겨보자.

나쁜 일도 좋았고,

좋은 일도 좋았어.


“이제 설계자로 살기를 선택해.”




이전 06화 예전에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당신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