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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Sep 27. 2022

간절히 원할수록 닿지 않는 당신에게,

♪ Selene 6.23

세상이 열심히 사는 게 기특하다고

원하는 걸 선물로 툭 주면 좋겠는데,


어째서 욕심을 부릴수록

간절할수록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빠져나가는 걸까.




첫째의 유치원에서 부모참여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뒷산에서 애벌레를 만져보고, 손수건을 만들어 보고, 악기도 두드려보는 수업이었다.

수업 중 한 친구가 산길을 걷다가 딴 예쁜 산딸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친구들은 빨갛고 동그란 그것에 홀려버렸다. 수업을 뒤로하고 모두들 나뭇가지를 뒤적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귀여운 것, 예쁜 것, 빨간색인 것. 세 가지를 모두 좋아하는 첫째도 산딸기를 찾아내려고 안달이었다.


"엄마, 나도 저거 갖고 싶어!"

"그래, 엄마가 산딸기 보면 따 줄게. 알겠지?"


열 걸음을 걷더니, 딸은 다시금 물었다.


"엄마... 산딸기는 어디 있어...?"

"아직 안 보이네. 보이면 꼭 따 줄게, 조금만 더 걸어보자."


조금 더 걷다 보니 정말 산딸기가 달려 있었다! 선명한 빨간색, 동그란 알갱이! 친구들은 우다다 달려가 산딸기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실랑이 끝에 다부진 입매가 아기 호랑이를 빼닮은 친구 한 명이 쟁취했다. 딸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도 산딸기 갖고 싶은데..."


한 친구가 딸의 말을 듣고, 자기 산딸기를 '보여'주었다. 친구는 호의를 베푼 것이었지만 딸의 불같은 소유욕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딸의 눈에서 눈물 알갱이가 똑똑 떨어졌다.


“나도 갖고 싶어!!! 으아아앙!!!”


통곡에 놀란 나무들이 파르르 떨었다. 딸이 인내하지 못할 때마다 내 인내심은 무너져 갔다. 산딸기가 보이면 당장 따 주고 싶다. 하지만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끓어오르는 성질을 뱉어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했다.


"수업 끝나고 엄마랑 바로 산딸기 차즈르 그즈… 알겠지?"


딸에게 나의 끝나고 찾으러 가자는 말은, '찾으러 간다'보다 ‘지금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악기를 두드리는 것으로 욕구불만을 달래고 있을 때, 아까 산딸기를 ‘보여’ 줬던 친구가 다가왔다. 다람쥐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도토리를 꺼내듯 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산딸기였다.


"우와!!! 산딸기다!!!"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딸은 산딸기의 분자까지 들여다볼 기세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딸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애지중지하던 산딸기를 넘겨주며 말했다.


"엄마, 이거 가방에 넣어줘."


나는 벌써 다 봤나 싶었지만 워낙 원했던 것이니 나중에 찾을 것 같아 보관해두었다.


참여수업이 끝난 뒤에도 딸은 산딸기를 찾지 않았다. 그날 밤 결국 산딸기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내가 버리는 것을 봤을 때도 딸은 덤덤했다. 딸이 갖고 싶어 했던 것은 산딸기가 아니었나 보다. 무엇을 갖고 싶어 했던 걸까… 소유하는 기쁨? 친구들과의 소속감?


딸의 산딸기는 나의 에어팟 프로를 떠올리게 했다. 버스에서 에어팟 프로를 ‘무심하게’ 끼고 창문 밖을 바라보는 승객들을 부러워했다. 나도 ‘무심한’ 분위기를 귀에 꽂고 싶었다.

갖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갖자, 갑자기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사람들의 귀에 꽂힌 하얀색 에어팟 프로가 보였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책 <네빌 고다드의 부활>을 읽던 때였다. 그 책에는 ‘I am’이 자주 쓰여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간판에 ‘I am’이 쓰인 가게를 두 개나 발견했다. 그 버스는 5년 동안 매일 같이 타고 다녔고 노선은 그대로였으며, ‘I am’ 가게들의 간판은 적어도 몇 년은 지나 보였다. 이렇게 나는 주로 생각하던 것을 바깥에서도 자주 마주한다.

또 있다. 남편은 내가 ‘I am’을 발견할 때 탄 그 버스를 반평생 타고 다녔는데, 나와 사귀고 내 생일을 알게 되자 소름이 돋았다. 내 생일과 그 버스 번호가 똑같았던 것이다. 남편은 번호가 똑같은 나를 끌어당긴 걸까. 아니면 버스와 나는 그저 우연일까.


아무튼 사람들의 귀에 에어팟 프로가 보일 때면, 매일매일 머릿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오리고 내 얼굴을 그 위에 붙여 넣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결국 용돈을 모아서 샀다. 스마트폰에 블루투스를 연결한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꾹 눌러 노이즈 캔슬링 – 음악을 제외한 소음을 차단해주는 기능이다. 버스가 멈출 때 나는 푸슉 소리 같은 듣기 싫은 소리를 지워준다. - 을 켰다. 마침내 버스에서 에어팟 프로를 ‘무심하게’ 끼고 창문 밖을 바라보는 승객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갖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졌다. 당연하다. 이미 가졌기 때문에, 내 곁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상상만 하면 우주가 원하는 것을 쥐여줄 거라 말하는 책을 스스로에게, 사람들에게, 현실에게 실망하여 지칠 때마다 끼고 살았다. 갖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상상하기만 해도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시크릿'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질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 같았고, 현실엔 부족한 게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간절히 원하며 가지려고 노력할 때마다, 현실에 없다는 결핍이 고개를 내밀어 괴로웠다.


여태까지는 방법이 틀렸던 것이다. 산딸기를 이미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산딸기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이어폰을 이미 가진 사람은 남의 귀에 어떤 이어폰이 꽂혀 있는지 관심 갖지 않는다. 이미 행복한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욕망할수록 지금 원하는 그것이 곁에 없다는 빈자리가 느껴진다. 오히려 욕망하지 않을수록 소유한 사람과 같은 기분으로 살게 된다.


그럼에도 욕망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불만이 생겼다.

‘욕심을 버리라고? 그게 네가 말하는 해답이야? 난 그걸 받아들일 수 없어. 너무 간절해서 원하게 되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난 갖고 싶어. 누리고 싶어. 하고 싶은 게 있어! 없으니까 원하지. 못 가졌는데 어떻게 가진 듯이 살 수 있겠어.’


“욕심이 없으면 뭐하고 살아? 욕심이 있어야 꿈을 꾸고, 인생을 더 즐기면서 살 수 있는 것 아냐? 나는 욕심을 내면서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한 친구가 욕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했던 말이다. 이 친구의 말은 내 안에서 해답이 들릴 때까지 울리고 있었다.


아직 서툴지만, 이제 이 의문에 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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