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d of a day
인간은 시스템 종료가 안 돼.
자는 순간에도
뇌는 오늘 모은 기억들 정리해야 하고,
피부는 닿는 건 뭐든 느껴야 해.
심장은 말해 뭐해.
네 몸 지금도 애쓰는 중이니까,
마음이라도 좀 쉬게 해 줘.
"모든 인류의 문제는 방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 블레즈 파스칼은 알았을까. 자신이 한 말이 먼 훗날 한 동양인 주부의 뼈를 때릴지.
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멍하니 있으면, 공허함이 몸을 집어삼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허감이 느껴질 때마다 그 여백을 메우려고 드라마를 봤다. 그걸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로, 배워야 인정받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것은 게으르다는 증거였다. 그것이 항상 지식이나 생산적인 경험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발전했다.
둘째로, 가만히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즉,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싫었기 때문에 내 생각도 싫어했다.
드라마로 도망가 나 자신을 잊으려고 노력해왔다. 이 방법이 인생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긴 시간이 지나 있었다.
마음이 쉴 틈 없이 바빠서 머리가 터질 것 같거나 공허할 때마다 내가 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머그컵에 물을 따라라. 물이 컵에 부딪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자. 그리고 컵 손잡이와 지문이 닿을 때 나는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반드러운 촉감을 느껴보아라.
그다음, 물을 마셔보자. 꼴깍꼴깍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에 집중해보자. 지금, 따라 해 보자. 당신이 집중하기만 해도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다. 심장에 집중하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뛰는 게 느껴질 것이다.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하면, 당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나 트라우마에 파묻혀 있을수록 이런 감각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생각은 너무 강력해서, 괴로운 감각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느낌을 지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사실조차도 지울 수 있다.
책 <몸은 기억한다>에서는 감각을 지우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극도로 괴로운 감정 상태에서 속이 뒤틀린다거나 심장이 부서지는 기분을 느낀다. 감정이 주로 머릿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통제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가슴이 무너지거나 복부를 한 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이 끔찍한 내장 감각을 떨치려고 무엇이든 시도한다. 다른 사람에게 절박하게 매달리거나 약물 또는 알코올의 기운을 빌려 감각을 무디게 만들거나, 칼로 자기 피부를 그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감각’으로 대체하는 행동 등이 이에 포함된다. 약물 중독부터 자해 행동까지, 얼마나 많은 정신 건강 문제가 감정 때문에 발생한 이 견딜 수 없는 신체적 고통에 대처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될까?”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답답한 느낌은 생각에 잠식되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그럴 때마다 오감으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자.
당신을 생각에서 구출하고 싶어서, 피부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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