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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peolive Aug 18. 2017

눈물





겨울 방학을 얼마 앞두고 있다. 중학생이 된 막내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간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무도 없다. 마루가 보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상이 하나 있다. 신문지가 덮여 있다.  간장종지에 간장이 담겨 있다. 가스레인지를 본다. 냄비가 있다. 그리고 냄비 뚜껑을 열어 본다.  시래기 된장 국이 있다. 며칠 전 막내의 어머니는 삼 남매에게 무엇을 해 줄까 물어봤었다. 삼 남매는 지난달 먹어본 시래기 된장국의 맛을 잊지 못해, 시래기 된장국을 다시 해 달라고 했었다.


아파트 앞에 눈이 쌓여 있다. 도미노 블록을 촘촘히 세워 놓은 듯한 5층짜리 주공아파트의 배열은 햇볕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아파트 앞의 공간에 싸여 있는 눈은  봄이 오기까지 막내와 동내 아이들의 눈썰매 장이 된다.  날씨가 매섭다. 연탄아궁이로 보일러를 돌리는 아파트, 다행히 작은방 뒤에 아랫목이 있어서 이불을 덮으면, 따스하다. 오줌이 마려워도 가능한 아랫목에 오래 눌러앉고 싶어 참고 참는다. 행여나 오줌이 막내의 열을 빼앗아 갈까 막내는 더더욱 소변 보기를 꾸욱 참는다.


방학이 시작되고, 설날이 다가온다. 막내의 어머니는 특별한 설을 삼 남매에게 만들어 주고자 햄이라는 것을 사 가지고 오신다. 삼 남매는 원형으로 된 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햄을 먹는다. 누가 먹을 세라 그들은 밥보다 햄을 먼저 입속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삼 남매가 다툰다. 아니! 막내가 우긴다.


"엄마!!! 형아가 더 많이 먹었다. 엄마!!! 누나가 나보다 2개 더 먹었어!!!"


그리고 어머니는 말한다.


"'미안하다. 내가 더 못해줘서..."


막내의 눈은 순간 어머니를 향한다. 어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본다. 순간의 짧은 고요함이 흐른다. 삼 남매의 식사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끝난다.

막내는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기억한다. 햄 한조각도 드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과 어머니의 눈물을...




서울의 한 중학교 수학 시간이다. 막내는 수업 시간이 싫다. 아니 수학을 가르치시는 그 수학 선생님의 수업을 싫어한다. 막내가 바라는 선생님의 상은 이렇다. 수업시간에 유머를 곁들이고, 막내 수준에 맞추어 쉽게 설명해주고,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교가 넘치는 그러한 선생님... 막내는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짝꿍에게 자신의 수학 선생님을 싫어함에 대해 공감을 사고자 말을 건다.



"야! 이 수학선생님 정말 못 가르치지 않냐? 정말 못 들어주겠어!"


그러자 짝꿍이 말한다.


"난 괜찮은데. 나름 설명도 잘해주시고, 이해도 쉽고."


막내는 잠시 말이 없어진다.

...

..

.


고등학교 입시시험 만점은 200점이다. 인문계를 가려면 150 점은 넘어야 안전하다. 막내는 143점이라는 점수와 함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막내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냥 물 흘러가듯이 진행되는 것이다. 대충 공부하고 대충 인생을 살면, 형이나, 누나처럼 자연히 고등학생이 되고, 시간이 흐러면 당연히 자동으로 대학생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 막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 입시가 가까워지게 되면서, 담임 선생님의 면담이 시작된다.


"음 4년제 대학은 어렵고.... 전문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


막내는 순간 놀란다. 남들 다 가는 것으로 여기는 4년제 대학도 못 간다는 말에..... 그것도 서울 안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간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하지만, 막내는 형이나, 누나처럼 당연히, 그리고 물 흐르듯이 자신도 언젠가는 대학생이 될 것이고, 물 흐르듯이 자신도 언젠가는 직장인이 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입시를 낙방한다. 4차례나....




학원에 가야 할 막내는 어느 날 학원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 때 놀던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다. 13평 주공아파트의 작은 방에 친구들이 북적거린다. 담요를 깔고, 친구들과 점 100원씩 고스톱을 친다. 아침에 시작된 고스톱은 오후 늦게 까지 지속된다. 막내는 친구들에게 돈을 꾸으며 계속 고스톱을 한다. 그리고 계속 돈을 잃는다.  점점 약이 오를 때로 오른 막내는 돈을 많이 딴 친구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김 * 완'이라는 친구의 멱살을 잡는다. 함께한 친구들이 말린다. 막내는 이기고 싶은 맘도 있지만, 순간 자신의 욕설에 기가 죽지 않고 맞서는 친구가 싫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꺾이지 않은 기세에 약간 두려워진다. 눈을 내리고 막내는 잠시 맘을 가다듬는다. 막내는 다시 고스톱에 임한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아파트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막내는 시간을 본다. 오후 4시경이다. 막내는 갑자기 두려워진다.


'설마 엄마는 아니겠지. 파출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시면 언제나 저녁 6시 지나서 오시는데...'


잠시 후 방문이 열린다. 막내의 어머니다. 막내는 당황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하는 변명을 만드려 한다. 친구들은 슬슬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아 완전 ㅈ 됐다.'라고 막내는 혼자 중얼거린다.


막내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지난날 언제나 듣던 어머니의 큰소리와 훈계가 귓가에 맴돈다.


'때려치워라.!!!! 나가서 장사 나하고 살아라.!!!!'


그런데...

...

..

.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말이 없으시다.

...

..

.


막내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본다. 망연자실 한 모습의 어머니, 삶에 찌든 어머니, 모든 희망이 없어져 버린 어머니, 삶의 소망이 없어진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

..

.


막내는 그때의 어머니의 그 눈물을 평생 간직하게 된다.





또 다른 새벽이 밝는다. 막내는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습관적으로 가방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새벽의 공기는 쌀쌀하다. 따스한 아랫목이 그립다. 버스를 탄다. 자리가 많다. 너무 이른 새벽이어서, 그리고 일요일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다.  순간 막내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해 본다.


'4번이나 떨어진 대학입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새벽에 일어나고 학원 가서 공부하는 생활이 언제까지 일까.'


막내는 두려움이 앞선다. 순간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리고 너무 졸린다. 이 세상에 바로 이 순간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일요일의 여유를 만끽하며, 행복에 겨워 미소를 지으며 꿈나라를 여행하는 이들의 잠자리가 부럽다. 방금 전까지 막내가 누워있었던, 따스한 아랫목이 그립다. 그리고 따스한 엄마의 품이 그립다. 막내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해진다. 또 하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대학입시를 위해서 막내는 눈물을 훔친다.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학원으로 가는 길에 신문 하나를 산다. '한국일보'다. 90년도 초반 바로 이 신문사에서는 대학 입시생들을 위한 입시문제를 주말에만 발행하는 신문에 함께 실었다. 대부분 일본 입시에서 나오는 어려운 수학 문제들, 그리고 영어문제들이 실린다. 학원에 가서 영어를 풀어 본다. 60문항이다. 정답을 맞혀 본다. 오전 10시가 된다. 이제 수학을 풀 차례다. 75문항이다.


'점심 전에 풀고 밥 먹으면 되겠다.'라고 막내는 스스로 계획을 짠다.


문제를 푸는 가운데 학원의 한 급우가 막내에게 다가와 수학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그리고 막내에게 말한다.


'야 그나저나 우리 학원 수학 담당하시는 분 정말 못 가르치지 않니?'


막내는 잠시 머뭇거린다.


'아... 그... 저.... 좀 그렇....치....'


순간 막내는 지난날 자신이 중학생 때 자신의 짝꿍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야 이 수학선생님 정말 못 가르치지 않냐? 정말 못 들어주겠어!'라고 했던...

하지만, 막내는 지금의 수학선생이 그리 나쁘지 않다.  


그 이유는 막내에게 있어서, 배움과 가르침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려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막내는 다시 바로 그 한국일보의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에 문제를 다 풀어서 이에 대한 답을 맞혀 본다. 몇 개 틀린 것을 확인한다. 점심시간이 다되었다.


'그래 틀린 문제가 몇 개 안되니 이것 풀고 밥 먹자'라고 막내는 자신에게 말한다.


막내는 틀린 수학 문제를 다시 한번 풀어본다. 그런데 적분 하나가 이상하다. 분명히 맞게 풀었는데, 답이 틀린 것이다. 해설지를 보면 되는데 막내는 해설지가 보기 싫어진다. 막내는 다시 한번 자신이 틀렸던 적분 문제를 풀어 본다. 답이 틀린다. 이에 다시 풀어 본다. 계속해서 풀어 본다. 이렇게 풀어 보고, 저렇게 풀어보고, 여러 방향으로 풀어 본다. 그런데 답이 계속 틀린다. 옆에 있는 급우에게 물어본다. 이것 답이 틀린 것 같다고 하나 그 친구는 맞게 풀었다고 한다. 막내는 그 수학 문제의 해설과 답을 보면 되는데, 왠지 괜한 고집이 생긴다. 그리고 그 문제를 계속 풀어 본다.


틀렸던 수학 문제 하나만 풀고 점심을 먹으려던 그의 계획은 무너지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다. 학원 자습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막내는 신문지 뒷장에 있는 수학 문제풀이 해설지를 펼쳐본다. 그리고 자신이 왜 정답을 맞히지 못했는지 확인을 한다. 4+7을 막내는 계속해서 10으로 계산했던 것이다. 자신의 똥고집으로 보낸 하루에 대한 후회 그리고 그 문제와의 싸움에서 진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막내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훗날 막내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록 맞추지 못한 바로 수학 적분 문제였으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이런저런 각도로 풀어 보고, 고민한 그 시간을 통해 적분을 더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음을...

 



어느덧 학력고사는 끝나고 합격자 발표를 보러 서울의 한 대학교로 간다. 합격자 명단을 본다. 이름이 없다. 막내는 깨닫게 된다. 인생이란 자연히 물 흘러가듯이 편하게 입학하고, 편하게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고, 그리고 편하게 순리대로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막내는 가족들에게 군대 다녀온 뒤 직장 알아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마지막 기회 한번 남았으니 한번 더 보자며, 독려를 한다.



막내가 학원에서 공부할 때 함께 단짝처럼 옆에 있어준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은 '이응기'이다. 충청도 사람이다. 동양인 치고는 검은 얼굴에 쌍꺼풀이 없는 그는 키에 비해 몸이 좀 야위었다. 그리고 말이 별로 없는 친구다. 그는 공부를 잘한다. 우등반이 모여있는 학원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학생이다. 근데 그에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매일 아침 학원에 와서 뭔가를 읽고 눈을 감는다. 그가 읽는 것은 성경책이고, 그가 눈을 감는 것은 기도이다. 그리고 약을 먹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결핵 약이었다. 그는 바로 그 결핵으로 인해 자신의 키에 비해 나약해 보이고 늘 피곤해했던 것이다. 막내는 그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막내도 성경책을 읽고 기도를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자신의 낙방 사실을 안 막내는 그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지원한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내는 많이 부러웠지만, 그의 합격에 진심 기쁘고 감사했다. 얼마 뒤 막내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부터 쪽지를 선물로 받는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Phil 4:6~7)


4월에도 눈이 온다는 춘천의 겨울은 매섭다. 막내, 막내의 형 그리고 막내의 어머니는 춘천의 한 여관방에 들어간다. 3평 정도의 방에 전화기와 재떨이가 보인다. 그 옆에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이불이 차곡히 게어져 있다. 6번째의 학력고사 시험을 앞두고 있다. 막내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다. 대학에 합격하면, 기쁘겠지만, 다시 낙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실망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러한 맘이다. 막내는 자신이 정리한 요약집을 잠시 훑어본 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시험 보는 장소는 의학관에 있는 예과 강의실이다. 히터의 열기가 뜨겁다. 외투를 벗고, 막내는 시험에 임한다. 수학시험시간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한숨이 들린다. 막내가 수학을 푼다. 문제가 어렵다. 하지만, 맘이 왠지 맘이 편하다. 주관식을 푼다. 7문항인데, 답들이 모두 이상하다. 학력고사 시험의 수학 주관식 답은 대부분 딱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주관식 답은 무슨 수학공식 하나 정리하는 것 과 같은 답들이다. 막내는 그냥 자신이 처음 계산한 답을 답안지에 적는다.


시험을 마치고 여관방에 온 막내에게 어머니는 뭐 먹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것 있냐고 물어보신다. 마침 여관 옆에 극장이 하나 있다. 막내는 어머니에게 영화가 보고 싶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어머니는 그냥 여관에 있겠다고 하신다. 막내와 큰아들은 여관 밖을 나와 심야영화로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보디가드'영화를 본다. 막내에게 영화의 감동은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단지 이제 다 끝난 것 같은 홀가분함과 왠지 모르게 평안한 맘이 한없이 막내에게 몰려온다.


며칠 뒤 어머니가 막내를 깨운다. 잠에서 깬 막내가 성급하게 어딘가 전화를 한다. 합격했다는 음성안내를 받는다. 전화를 끊고, 어머니와 삼 남매는 눈물을 흘린다. 내신 6등급(당시 12등급제, 일반고) 이 6번째 대학 입시 도전에 의과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5층짜리 주공아파트의 연탄아궁이 작은 방을 막내는 자신의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들이 좀 더 자라고 나면...


지금은 없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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