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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흙탕물로 변한 강 앞에서도 그들은 웃었다.

상처 입은 자연과 덤덤한 사람들, 빠이 여행의 마지막 기록.

by 나들레



이 이야기는 빠이 여행 중 겪었던,

조금 특별한 '번외' 기억이다.


토요마켓과 주립공원 일정을 마친 후, 숙소 사장님 부부의 이끌림으로 시작된 여정이었다.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요. 같이 갈래요?"


그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빠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변이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꽤나 낭만적인 리버뷰였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자리 잡은 'Seven 50s 호스텔'이 운치 있어 보이는 걸 보면, 맑은 날 이곳의 풍경이 얼마나 평화로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하필이면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비가 흩뿌렸고, 무엇보다 강물이 거칠게 불어나 있었다. 당시 치앙마이 전역을 휩쓸고 간 지난가을 대홍수의 여파로, 아름답던 자연들이 서로 뒤엉켜 할퀴고 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흙탕물로 변해 무섭게 흐르는 강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얼마 전 치앙마이에 큰 홍수가 있었는데 빠이는 어땠나요?"


사장님 남편분은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물이 많이 불어나긴 했지만, 치앙마이보다는 괜찮았어요. 태국은 워낙 물이 잘 빠지는 구조라 금방 괜찮아져요. 이제 우기도 끝났으니까요."





사실 다시 떠나기로 한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하러 오기 전,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태국 홍수 소식에 콩 볶듯 마음을 졸였었다. '비행기표를 끊어? 말아?', '만약 갔다가 고립되면 어쩌지?' 수만 가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본 현지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자연의 거대한 생채기 앞에서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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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내가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에도, 여행 전의 그 심란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곳곳에 홍수의 잔해는 조금 남아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시는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섞여 평범하고 평화로운 여행을 즐겼다.


거친 강물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들의 덤덤함이, 어쩌면 가장 강력한 회복력이 아니었을까.


지난해의 물난리로 마음 졸였을 상인들과 현지 분들이 생각이 났다. 현지 지인에게 전해 듣기로는 올해도 작년처럼 많은 비가 내려 도로가 잠겼지만, 다행히 금세 물이 빠지고 복구되었다고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얼마 남지 않은 올해와 다가올 내년에는 그들의 일상에 맑고 단단한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나 또한, 뉴스 속의 두려움 대신
내 눈앞의 평온함을 믿으며
치앙마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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