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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리즘 Nov 01. 2024

나에게 쓰는 편지 (1991)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신해철을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누구나 이 노래를 사랑했을 것이다. 사실 이 노래는 방송에서 라이브로 들려진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래가 소개되고 먼 훗날 콘서트 등에서 라이브로 불려졌지만,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는 주로 라디오 또는 신해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카세트 데크를 통해 즐겨 들었던 노래이다. 그만큼 유니크했지만 노래 가사에 담긴 의미는 결코 유니크하지 않았으며 젊은이들의 생에 위로와 위안이 되어 주었던 마왕다운 곡이었다.


  삶의 치열한 경쟁과 생존 정글 속에서 자신을 들어다 본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1990년대의 청년들에게 자기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가사부터 마왕은 이야기하고 있는 -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서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 - 속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아니 되며 자신에게 목소리 높여 외칠 없는 젊은 청년들의 구속된 삶에 대해 표현하는 가사는 진정으로 시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젊은 청년들의 걷고자 하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만큼 미숙하고 준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왕은 그런 젊은 쳥년들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과감히 그 부담을 벗어던지고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사실 이 노래의 핵심은 마왕 신해철의 중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통해 흘려 나오는 내레이션 가사에 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의 가사는 폭력적이었던 시대에 분노하였던 젊은 청년들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 속의 경제적 장벽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조차 되지 않았고, 그들의 뜨겁게 목소리를 높였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결국 현대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돈이라는 절대권력자 앞에 무릎 꿇어야 했던 모습을 안타까워한 것인가.


  그러나 마왕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의 메시지와 같이 결국 현실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소중한 것은 변하지 아니하고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에 우리의 가치, 철학, 사상은 언제나 변화하지 않으며 우리 가슴속에 담겨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1990년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에 대한 이해를 함께하면 더욱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으로 넘어오는 과정과 투쟁에서 월급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2030 세대들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잊지 않아야 하는 핵심가치.


  이 곡 <나에게 쓰는 편지>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적 청년상을 그려주는 철학서와 같다. 오늘 밤 꼭 한번 다시 들어보자. <나에게 쓰는 편지>가 들려주는 마왕의 메시지를.




파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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