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은빛 물결이 춤추는 제주의 가을

by 배태훈

내가 가장 좋은 하는 계절, 가을이 다가온다. 시원한 바람과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사춘기 시절 답답했던 나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붉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 ‘인생’을 생각했었다. 요즘에 들어서는 기후변화로 나의 계절, 가을이 점점 짧아져서 서운하다.

새별오름에서 바라본 비양도.JPG -새별오름에서 바라본 비양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제주의 가을은 어떨까?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제주를 가보지 못했던 나는, 제주에서 살기 시작하고 드디어 여름 끝자락이 다가오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제주의 가을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제주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억새가 온 제주를 덮는다.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가는 곳마다 일렁이는 억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한라산과 바다와 한껏 멋을 부리는 억새는 네모난 앵글에 담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아름답다.


가을 억새로 뒤덮인 최고의 장소는 오름이다. 제주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오름은 제주말로 봉우리나 산을 말한다. 360여 개의 오름은 각양각색이다. 뒷산을 산책하듯 오르기 쉬운 오름도 있고, 웬만한 등산 코스만큼이나 오르기 힘든 오름도 있다. 가을에 오르기에 좋은 오름에는 산굼부리, 용눈이오름, 새별오름,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새별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을 추천하고 싶다.



다랑쉬오름에서 본 아끈 다랑쉬오름.JPG - 다랑쉬오름에서 본 아끈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의 ‘아끈’은 제주 사투리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다랑쉬오름 바로 옆에 있는 아끈다랑쉬오름은 높이 198m, 비고 58m, 둘레 1,454m로 비교적 오르기 쉬운 오름이다. 다랑쉬오름 옆에 있는 오름으로 작고 아담한 모습이 지명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곳은 10분 정도면 오름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경사가 심해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정상에 도달하면 키만큼 자란 억새 사이에 큰 나무 한그루가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억새만 보이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을 찾을 때 이 나무를 보고 가면 된다. 억새 사이로 작은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오름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아름다운 아끈다랑쉬오름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바로 옆에 있는 다랑쉬오름을 오르는 것도 좋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보면 아끈다랑쉬 오름의 억새 사이로 난 작은 길이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 바다와 성산일출봉, 그리고 우도를 배경으로 한 억새 하트 길을 사진에 담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다.


새별오름은 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 느낌이 다르다. 평화로에서 바라보는 오름과 직접 오름을 오르는 것, 그리고 바다 쪽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느낌이 다 다르다. 바쁜 일정으로 제주를 오가는 관광객들은 평화로를 달리면서 보이는 모습만 알 뿐, 바다 쪽에서 바라본 새별오름의 모습은 잘 모를 듯하다.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 바다 쪽 새별오름까지 보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 오름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다. 새별오름 정상에서 동쪽으로 한라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제주의 서쪽 바다와 협재해변, 비양도가 보인다.


새별오름2.JPG - 새별오름
새별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JPG -새별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바다와 멋스럽게 어울리는 억새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그 어느 곳에서도 누릴 수 없는 행복이었다. 제주의 가을은 내게 색다른 선물을 주었다. 첫 해 가을을 보내며, 억새의 풍경을 담기 위해 가는 곳마다 사진기에 담기에 바쁠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다음 해 가을에는 내 마음에 허전함이 생겼다. 어디를 가든지 억새가 가득했지만, 육지에서 볼 수 있었던 울긋불긋한 가을의 풍경은 제주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육지에서 보았던 가을의 풍경이 그새 그리웠다. 한라산을 찾았을 때만 그나마 육지에서 보았던 가을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그리움은 서울로 올라온 후 맞이한 작년 가을에 알록달록한 숲과 나무를 보면서 나만의 가을을 즐기는 것으로 달랬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가을바람에 춤을 추듯 나를 반겼던 억새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제주의 은빛 물결이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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