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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숲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18

by 노루

나는 숲을 좋아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커다란 나무가 많은 숲을 좋아한다. 그런 숲길을 거닐다 보면 가끔 그곳에 우리만 있는 순간이 오는데, 나는 그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본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스치고, 새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벌레 우는 소리와 작은 동물들이 낙엽을 밟는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작은 암자의 목탁소리나 불경 외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작은 물소리가 들린다. 평화로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여행을 가서 산길을 걸을 때도 나는 괜히 몇 걸음 뒤쳐져 입을 다무는데, 그러면 나는 다른 세상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차 소리와 말소리와 녹음된 음악소리와 요란한 대화소리가 없는 곳. 쉽게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과 신경질 섞인 경적소리와 사람들을 재촉하는 알람음이 없는 곳. 나는 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숲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 도시에 있던 내가 얼마나 예민하게 뾰족거리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싸우는 소리에 같이 인상 썼던,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남편에게 말을 전하던, 지쳤다는 핑계로 한숨 쉬고 거칠게 말했던 나를 생각한다. 눈썹 사이에 세로주름이 박혀버린 나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천천히 깊이 쉬다 보면 그 검고 탁한 마음들이 초록으로 정화되는 느낌이다. 마음이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일부러라도 숲을 찾아가자, 그런 다짐을 한다. 남편이랑 손잡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숲길을 아주 천천히 걸으며 다람쥐 구경이나 하는 것. 나무 냄새를 깊이 마시고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을 올려다보는 것. 땅에 그 나뭇잎 모양으로 우거진 그림자를 보는 것.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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