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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19

by 노루

사무실 근처에 아카시아 나무가 많다. 우리 사무실은 산 밑에 있는데, 그 산에 온통 아카시아나무라 골목마다 아카시아향이 가득 고여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카시아향에 취해 산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흥얼거리고 다닌다.


어릴 때 아카시아 껌이 있었다. 달달하고 시원한 향이 나는 껌이었다. 나는 아카시아가 뭐길래 그런 맛있는 껌이 있나 항상 궁금했다. 그러다 아빠가 아카시아를 찾아줬다. 우리 아빠는 산골에서 나고 자라서 내가 모를만한 나무나 풀꽃, 새나 동물의 이름을 알려주는 걸 좋아했다. 요즘도 아빠랑 길을 걸으면 5걸음에 하나씩 무슨 나무 이름 같은 걸 듣는다. 엄마는 아주 질려버린 아빠의 오랜 습관이다.


나는 그렇게 아카시아 향을 처음 맡게 되었었다. 동글동글한 잎을 가진, 포도송이처럼 늘어진 희고 자잘한 꽃을 달고 있는. 정말 어찌나 그렇게 껌이랑 똑같이 달달하고 시원한 향이 나는지, 어릴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신기한 충격이었다. 아카시아, 이름도 어쩜 그렇게 아카시아, 은은하고 사늘할까. 나는 아빠처럼 그 좋은 향이 뭔지 사람들에게 아카시아 향을 소개해주고 다닌다. 누가 꽃냄새 난다, 하는데 그게 내가 아는 그 냄새라면 고개를 들어 아카시아 나무를 찾는다.


이렇게 꽃향기를 종류별로 맡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바람결에 슥 다가왔다 사라지는 꽃냄새는 봄 그 자체 같기도 하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봄냄새가 되고 문득 창문을 열면 되살아나는 초저녁의 냄새이기도 하다. 곧 사라질 그 진한 향들을 잡아두고 싶어서 아무리 향수고 디퓨저를 찾아봐도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꽃향기보다 좋을 수는 없다. 사람은 원래 손에 쥐지 못할 때 더 간절히 느끼니까.


서서히 얕아지는 아카시아 향을 뒤로하고 나는 또 내년에 반가이 다가올 그 꽃향기를 기약한다. 그때의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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