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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처 게임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22

by 노루

사실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걸 또 오래 하지는 못하는 성격이다. 새로운 게임은 좋아하지만 한주를 넘기기가 힘들다. 지루함을 깨기 위한 퍼즐 게임이나 RPG 게임을 하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 오는데 그때 나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게임을 접어버리는 편이다. 아니 마음먹고 접는 것도 아니라 그냥 잊어버린다.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근데 가끔 게임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근데 한가할 때가 아니라 바쁠 때일수록 더 생각날 때가 있다. 요즘이 그랬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야근도 잦고 주말에도 집에 일거리를 가져와 일하기 일쑤였다. 근데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거다. 아, 보물 찾으러 가야 되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은 옛날 해적들의 유적을 뒤져 보물을 찾아내는 스토리 속에서 진행되는 게임이다. 나는 그런 게임을 하다 보면 주인공에게 곧잘 감정 이입이 되는데, 내 목표는 어느새 '보물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하나 가방을 채워나가는 재미와 실패할 듯 말 듯 나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그렇게 아슬아슬할 수가 없다. 물론 한 시간 게임하면 열 번은 족히 죽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 너무나 명확한 목표와 함께하는 여정이 즐겁다.


약간 이건 현실도피와 비슷하다. 끝나지 않는 업무와 집에서는 잠만 자는 서러운 일정. 그 속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고, 일이 아닌 다른 것에 몰두할 거리를 찾아 헤매게 될 때가 있다. 그러기에 게임은 얼마나 적합한가. 입병이 가실 날이 없는 요즘, 나는 그렇게 보물을 찾고 싶다. 바다와 산이 드넓게 펼쳐진 외국의 어느 자연 속에서 아주 오래전 세상에 지금과 달랐을 때 누군가 갖추었던, 돌로 쌓인 높은 벽에 이끼가 가득한 보물 창고를 뒤늦게 더듬어 나가며 습하고 서늘한 냉기를 느끼고 싶어진다.


사실 나는 안다. 바쁜 시기가 지나가면 나는 이 게임을 또 잊을 것이라는 걸. 그땐 일상을 더 활기차게 지낼 게 분명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자꾸만 갈구하는 간사한 사람 마음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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