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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 때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23

by 노루

요새 해가 뜨겁다. 날씨가 너무너무 더울 때, 그 더위가 참 싫을 때 쓰는 방법이 있다. 바로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볕 아래서 눈을 딱 감고, 아 따뜻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정말 신기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따갑게 녹여버릴 것 같은 더위가 꼭 안아주는 것 같은 따뜻함이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딱 한 5초 정도는 그 더위가 싫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여름은 신기하다. 다 부드러워진다. 바람도 숨도 공기도 다 부드러워서 미지근한 물속에 파묻히는 것 같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이 더 좋지만 그래도 그 부드러움은 신기하고 항상 낯설다. 바람이 부드럽다는 느낌은 여름에만 온다. 여름 바람은 하나 기색도 없이 살그머니 와서 부드럽게 안고 간다. 이게 또 싫을 땐 싫어도 막상 부드럽다 생각하면 또 싫지 않다. 그래서 그 너무나 부드러워서 다 풀어져버릴 것 같은 더위가, 그렇게 온 세상에 부드럽게 흐물흐물 녹고 있는 중에도 열심히 자기 존재를 알리는 풀벌레와 매미 개구리 이런 것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내게는 또 여름이 왔구나 알게 되는 신호 같은 것이다.


그럴 때, 여름이다. 따뜻하네. 잠시 생각해 보면 좋다. 철마다 다가오는 계절이지만 반갑다. 계절이 오는 건 다 반갑다. 내 나이만큼 겪어온 계절인데도 항상 돌아올 때면 3년 만에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갑고 낯설다. 도대체 언제가 이렇게 더웠나 싶다. 또 생각해 본다. 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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