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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기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25

by 노루

내가 다닌 대학교는 수원에 있었다. 전철역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 오가는 길에 화성행궁이 있었다. 버스 안에서 몇백 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성곽과 대문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괜히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는, 전철 대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경로를 찾아 두 번을 갈아타고 꽤 많이 걸으며 다니기도 했다.


나는 전철보다 버스가 좋다. 버스에 뒷자리쯤 앉아서 벽에 붙은 노선도를 보면 아기자기한 동네의 어떤 곳들의 이름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아파트가 있는지, 도서관 이름은 뭔지. 큰 약국이나 가게, 회사 건물, 조형물 이름까지 보고 있으면 그 동네의 곳곳을 다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우리 동네를 다니는 버스 중에는 라일락 마을, 나비공원 같은 종점을 전광판에 달고 다니는 차들이 있다. 예쁜 이름이다. 그런 버스를 보면 토토로의 고양이버스처럼 나를 현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내가 상상해 보는 라일락 마을과 나비공원은 물론 실제와 다르겠지만 그런 동화 같은 생각을 잠깐 해본다.


창문을 얼마든지 열 수 있고, 정류장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시장을 지날 때면 옛날통닭 냄새나 도나츠 냄새가 나는 곳. 아침이면 피곤한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이면 고단한 사람들을 만나는 곳. 기사님께 괜히 인사를 하게 되는 곳. 퇴근길 창가 자리에 앉아 고개를 창문에 기대면 오늘도 끝났다, 마음이 뒤늦게 놓이는 곳. 엉뚱하게 평일 대낮에 버스 탈 일이 생기면 괜히 어색하고 한적하고 따뜻하고 조용한 그곳. 나는 매일같이 빙글빙글 같은 곳을 돌며 사람들을 각자의 현실로 옮겨주는 버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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