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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음식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27

by 노루

나는 입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음식들을 좋아한다. 부드러운 빵이나 크림, 치즈, 계란찜, 푸딩, 죽, 스프, 부드럽게 폭 익은 고기나 생선, 입안에서 포실포실 부서지는 감자, 고구마, 호박, 이런 것들이 정말 좋다.


입천장이 어렸을 때부터 잘 까졌다. 돈까스나 과자, 시리얼, 바싹 구운 빵이나 마른오징어를 먹고도 입안이 잘 다치고 피맛이 났다. 급식으로 나오는 야채튀김이 제일 싫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채 바싹 튀겨진 튀김은 항상 입안을 상처 냈다. 제일 좋아하는 끼니는 촉촉하게 끓인 계란찜에 밥을 비벼 먹는 것. 호호 잘 불어 식혀먹기만 하면 그렇게 안전하고 포근한 존재감일 수가 없다.


남편은 식감이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쫄깃한 것, 바삭한 것,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쫄깃한 음식을 먹다가 먹는 부드러운 음식은 유난히 더 맛있고 편안해서 반갑다. 매운 주꾸미볶음을 먹다 찾는 밋밋한 메밀전처럼, 마른오징어에 얹어 먹는 고소한 마요네즈처럼.


먹으면서 애쓰지 않는 게 좋다. 다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입안을 부드럽게 맛으로 채우고 그 맛을 편안히 감상하는 게 좋다. 아마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될 것 같다. 사는 것만으로도 뾰족이 날 서있고 거칠고 딱딱한 것 투성인데, 밥이라도 편하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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