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29
이전 회사는 걸어서 2분이면 시장을 갈 수 있었다. 퇴근 버스가 늦게 오면 시장에 들어가 제철 과일과 채소를 구경하는 게 내 작은 낙이었다. 에어컨 없이 미지근한 공기가 고여 있고 평상엔 너 나 할 것 없이 낡은 선풍기가 돌아간다. 그 와중에 어디서들 뽀얀 아기나 털을 짧게 민 강아지에게 부채질을 해준다.
내가 생각하는 여름 시장 냄새는 과일가게 앞을 지나갈 때 물씬 난다. 자두와 포도, 복숭아 같은 수분기 많은 과일들이 각자의 냄새를 바쁘게 풍기는데, 그중 눈치 없게 자꾸 모기향 냄새가 끼어든다. 매캐하고 싸한 냄새가 그 부드럽고 달큼한 냄새에 섞인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시장 냄새였다. 그렇게 타들어갈 듯이 뜨겁다가 한 김 식을 초저녁에, 시장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고 퇴근길 거니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그 덥고 땀나는, 그 와중에 좀 살만해진 귀갓길에 그 촉촉하고 농익은 과일 내음과 모기향 내음이 시장에 가득 퍼진다.
여름 과일은 잘 물러서 해질 무렵만 되어도 꼭 무른 과일이 한 바구니씩 진열대 아래로 빠졌다. 그 농익은 향에 섞이는 모기향 냄새는 뭔가 모히또의 민트향 같다고 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나한텐 좀 그랬다. 그 계절의 정취를 더 실감 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그 모기향 냄새나는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산다. 이거 달아요? 물어보고 산다. 항상 사장님은 달다고 하시고, 생각보다 달지 않을 때도 많은데도 그냥 습관처럼 묻는다. 바구니에서 데구르 굴러 검정 비닐에 담기는 과일은 이제 내 거다. 주로 부드럽게 익은 자두나 포도 같은 여름 과일을 산다. 수분이 충만하고 향이 진한, 껍질이 얇고 꼭지 사이로 과육의 향이 터져 나오는 그런 과일들을 산다. 버스 안에서도 내 비닐봉지 안에서는 그 향긋한 내음이 가득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참지 못하고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보거나 자두를 베어문다. 여름맛, 여름 과일의 맛이 입안 가득 들어찰 때. 그럴 때 다시 여름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