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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 김치 그리고 밥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26

by 노루

여름이면 입맛이 유난히 없어지는 기간이 한 번씩 온다. 배도 고프지 않고, 배가 고파도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던가,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끓이고 치우기가 너무 귀찮다던가. 이런 이유로 식사 시간은 자꾸 밀리고 배고픈 타이밍도 지나서 대충 설거지도 나오지 않는 샌드위치 따위를 먹게 되거나, 몇 날 며칠 냉모밀만 먹는다거나 하는 식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딱 밥 반공기에 반찬 한 가지만 한 숟갈 얹어 초간단으로 끝내버리는 것이다.


그 반찬은 정해져 있다. 김치랑 김이다. 근데 가끔 이렇게 먹으면 깜짝 놀라게 된다. 아니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그 딱 하나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반찬의 이야기다.


맨밥에 김만 한 장 얹어 입에 넣어보면 새삼 조미김의 감칠맛과 바다맛이 선명하다. 다른 양념맛 없이 얼마나 고소하고 간간한지, 밥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다. 밥을 많이도 싸 보고 조금도 싸 본다. 맛은 천차만별이다. 내 맘대로 간을 조절하면서 먹는다. 마지막 밥은 고민고민해서 딱 그때의 적정량을 남겨 최적의 간으로 밥과 함께 먹는다.


우리 집은 밥을 해서 통에 담아 냉장실에 넣어 그때그때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데, 정말 날이 더울 때는 밥을 좀 덜 데우고 찬물을 자작하게 부어 물에 만다. 그리고는 대충 집에 있는 김치를 아무거나 꺼내서 밥 위에 올려 먹는다. 그럼 그때 안다. 물에 만 밥이 이렇게 잔잔하고 포근하고 고소한지, 그 밥에 올려 먹는 김치가 그렇게 아삭하고 시원한지.


이런 식사를 할 때면 일상적으로 먹어오던 끼니들이 어쩌면 과한 상차림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어릴 때엔 국에 밥만 말아줘도, 반찬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하던 어린이였는데. 나이는 잔뜩 먹는데 자꾸만 넘치는 줄 모르고 더 찾는다. 그래서 일부러 부족하고 작은 것들을 찾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항상 전처럼 여전하고 충분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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