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할래요
현대인의 3대 필수 영양소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그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카페인 하나뿐.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알코올과 니코틴 섭취량을 모두 카페인으로 치환하면, 나의 하루 카페인 충전량이 될 듯하다. 두 개나 없는데 나머지 하나라도 충분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사실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반나절이 멀다 하고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하는 직업이기에, 난 나의 비루한 상상력과 나약한 의지력을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 종착역은 바로 카페인(앞으로 또 다른 무언가가 생길 수도 있겠지). 만약 작업의 결과물을 두고 카페인으로 도핑테스트를 한다면 실격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어쩌면 같은 직업군의 모든 선수가 다 도핑에 걸릴지도 모르니 실격은 잠시 미루어두자.
사실 10대 때부터 20년 가까이 함께하는 불면증 때문에 너무 많은 카페인 섭취를 지양하려 했지만, 장기간의 자가 임상 결과 내 불면증과 카페인의 상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음이 밝혀졌다. 물론 과학적 근거보다 나의 커피를 향한 욕구가 편파적으로 반영된 결과일 확률이 몹시 큼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비단 각성제로의 역할뿐 아니라 커피나 차 그 자체로도, 마시는 순간엔 마음이 충만해지니까.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차 한잔 하자 건네는 말은 내겐 단순히 차 한잔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많이 마시고 좋아한다고 커피를 '잘 아는' 것은 또 아니어서, 무엇보다 믿음직한 사람이 좋다고 한 커피를 따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변함없이 좋아하는 커피가 있기도 하지만,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입맛은 가변 하니까.
하지만 이런 불확실한 입맛의 소유자일지라도 유럽의 커피라니! 자아 밑에 얕게 깔린 허세까지 긁어모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지. 영국과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았던 정보 중 하나는 바로 커피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들뜬 마음과는 다르게 이번 여행에서 커피에 관한 기억이 100% 완벽한 것은 아니다. 런던에서는 서툰 여행 스킬과 조급함에, 한참을 걷기만 하느라 기차역의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앉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경유지인 두바이 공항에선, 긴 공복 후 들이킨 아메리카노 덕에 한국 대신 지옥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할 뻔했으니.
그래도 늘 중요한 순간 커피가 손에 쥐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 잃어버린 레고 부품처럼 중간중간 사라진 기억도 많지만 여행에서 마셨던 커피의 기억을 다시 쌓아 조립해 보았다.
[커필로그 2 (brunch.co.kr) UK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