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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고 Sep 12. 2022

커필로그 1

커피 한 잔 할래요

현대인의 3대 필수 영양소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그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카페인 하나뿐.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알코올과 니코틴 섭취량을 모두 카페인으로 치환하면, 나의 하루 카페인 충전량이 될 듯하다. 두 개나 없는데 나머지 하나라도 충분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사실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반나절이 멀다 하고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하는 직업이기에, 난 나의 비루한 상상력과 나약한 의지력을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 종착역은 바로 카페인(앞으로 또 다른 무언가가 생길 수도 있겠지). 만약 작업의 결과물을 두고 카페인으로 도핑테스트를 한다면 실격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어쩌면 같은 직업군의 모든 선수가 다 도핑에 걸릴지도 모르니 실격은 잠시 미루어두자.

 

사실 10대 때부터 20년 가까이 함께하는 불면증 때문에 너무 많은 카페인 섭취를 지양하려 했지만, 장기간의 자가 임상 결과 내 불면증과 카페인의 상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음이 밝혀졌다. 물론 과학적 근거보다 나의 커피를 향한 욕구가 편파적으로 반영된 결과일 확률이 몹시 큼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비단 각성제로의 역할뿐 아니라 커피나 차 그 자체로도, 마시는 순간엔 마음이 충만해지니까.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차 한잔 하자 건네는 말은 내겐 단순히 차 한잔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많이 마시고 좋아한다고 커피를 '잘 아는' 것은 또 아니어서, 무엇보다 믿음직한 사람이 좋다고 한 커피를 따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변함없이 좋아하는 커피가 있기도 하지만,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입맛은 가변 하니까. 


에스프레소, 캡슐, 모카포트, 드립백, 핸드드립 까지. 막손이지만 어릴 때 일하며 배운 경험을 복기하여 이것저것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한 입맛의 소유자일지라도 유럽의 커피라니! 자아 밑에 얕게 깔린 허세까지 긁어모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지. 영국과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았던 정보 중 하나는 바로 커피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들뜬 마음과는 다르게 이번 여행에서 커피에 관한 기억이 100% 완벽한 것은 아니다. 런던에서는 서툰 여행 스킬과 조급함에, 한참을 걷기만 하느라 기차역의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앉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경유지인 두바이 공항에선, 긴 공복 후 들이킨 아메리카노 덕에 한국 대신 지옥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할 뻔했으니.


그래도 늘 중요한 순간 커피가 손에 쥐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 잃어버린 레고 부품처럼 중간중간 사라진 기억도 많지만 여행에서 마셨던 커피의 기억을 다시 쌓아 조립해 보았다. 


[커필로그 2 (brunch.co.kr) UK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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