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hoi파파 Aug 03. 2022

상담받았는데 왜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병욱 저자의 [나는 삶을 고치는 암 의사입니다]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상적인 사람도 암세포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루에 무려 5,000~1만 개의 암세포가 생긴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속 어디선가는 암세포가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생겨나는 암세포 수에 놀랐고 언제 어디에서 세포가 생길지 모르니 무서웠다. 하긴 내가 고혈압으로 기저질환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암세포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이는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인체의 자정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매 순간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죽이거나 잘못 분화된 세포가 스스로 죽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생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대한 능력을 지녔다.


문제는 자정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때 생긴다. 자정 능력은 마치 모나미 볼펜심에 있는 작은 용수철과 같다. 어린 시절 볼펜을 해채 하고 다시 조립하며 놀았다. 볼펜 안에 있는 용수철을 적당한 힘으로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러다가 용수철이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세게 잡아당기면 늘어진 상태에서 다시 되돌아가지 못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가해졌을 때 복원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은 어느 때보다 약하다. 부모들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바쁘다 보니 자녀들의 정서적 욕구를 민감하게 살필 여력이 없다. 의도치 않았지만 사실상 방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부모 탓만 할 수 있으랴. 아동·청소년의 사회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제가 시급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나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고, 팬데믹 이후 계층 간의 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가족 해체나 부부 관계 갈등 증가로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TV나 유튜브 시청,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었다. 심지어 입시주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학교 부적응을 부추긴다. 어쩌면 아이들은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스트레스 상황일지 모르겠다.


뇌과학 관점에서 아동·청소년 시기는 급격한 뇌 발달로 인해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취약하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오랜 시간 지속되거나 어떤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로 인해 심리·정서적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쉽게 탄력성을 잃을 것이다. 상실한 복원력을 되돌리기 어려운 것처럼 아이들의 잃어버린 회복탄력성을 상담 몇 회기로 다시 회복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다 세심한 관심으로 보살펴야 하고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


1. 부모의 일관된 태도가 중요하다.

상담 초기에는 의욕이 넘친다. 전문가가 가까이에서 도와주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아이도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픈 빨과도 같은 것이다. 처음 개업한 가게가 초반에 다양한 이벤트와 서비스로 손님을 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 개업 초기에 아낌없이 주었던 이벤트와 서비스는 줄거나 하지 않게 된다. 그 영향으로 거품 빠지듯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다.  


"어차피 상담받아봤자 엄마 아빠는 안 달라져요."

"나만 상담받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상담받을 필요가 있나요?"


상담의 효과도 마찬가지다. 상담이 중후반으로 넘어가고 상담이 종결이 되면 전문가의 도움 없이 그간 해왔던 것들을 부모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담 초기에 불태웠던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아이에게 쏟았던 관심도 줄어든다. 전문가에게 받았던 과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키지 않는다. 과거 비합리적인 양육 태도로 회귀하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것이다.


부모가 달라져야 아이가 변한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실이나 심리 센터에 보내는 것으로 부모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상담을 그르치기 쉽다. 처음부터 상담을 안 한 것만 못하다. 오히려 상담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며 치료 시기만 늦출 뿐이다. 아이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한 부모 역할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2.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아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

부모가 아이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치료가 시작된다. 부모의 인정이 곧 아이의 변화이자 치료의 시작점인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상담을 권하거나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하면 대부분 거부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온도차가 나는 것이다. 아이의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문제를 축소하거나 회피한다. 저항이 심하다.


만약 학교에서 자녀 문제로 상담을 권유를 하거나 병리적 현상으로 소아정신과에 가보라고 권유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아이 문제는 곧 내 문제이며, 직면하고 인정하는 순간 자기모순을 마주하기에 더 큰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감히 생각해 보지만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사실 내담자도 상담자도 직면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자폐증 아이는 교육하고 치료해서 '성공적인 자폐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우면 된다.
- [틱, ADHD, 발달장애 가정에서 치료하기] 본문 중에서-


아이를 어떻게 도울지만 생각해야 한다. 아이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 시기가 그만큼 늦춰지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발달 장애 문제로 또래 아이들보다 더딜 경우에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 아이에 맞는 교육 환경으로 바꿔줘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퇴행은 예방할 수 있다. 치료는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3. 문제 행동 제거에만 몰두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

매일 10시간 이상 스마트폰만 붙들고 게임하는 아이, 반항적인 아이, 적대적인 아이, 우울한 아이, 잦은 지각과 등교 거부하는 아이, 수업 방해는 물론이고 수업 거부하고 교실을 이탈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 학교 폭력 가해 아이, AHDA 아이, 친구 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소외된 아이 등 자녀 문제로 상담을 받기를 원하는 학부모를 만나면 같은 반응을 보인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이의 모든 문제 행동은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부모는 자칫 문제 행동 제거에만 몰두하는 실수를 범한다. 무엇보다 먼저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의 정서, 생각이나 감정, 행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문제 행동의 해결 실마리는 '관계'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도 불안정한 것이다. 또한 만성적으로 아이의 정서적 욕구가 결핍되었다. "많은 것의 결정적인 시기"라고 하는 유아기 즉, 0~7세까지 부모가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거나 충분한 애정과 사랑이 부족해서 결핍된 것이다. 아이의 발달을 미숙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안와 전두피질(OFC) 발달을 위해서는 애착과 신뢰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바탕 위에 적절한 자기 통제적 자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시형 저자 [내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는 부모라면 자기 조절력부터] 본문 중에서-


자기 조절 능력이 부족하면 감정에 대한 이해가 낮아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하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적절한 표현으로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 상황에서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만 키운다. 이는 관계 맺기와 학교 생활 적응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주의 산만하고 과잉 행동하거나 수업이나 등교 거부하고 학습 능력 낮아지고 친구 관계가 안돼 소외되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하는 것은 관계 맺기가 안 되는 2차 문제가 얽히고설켜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가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아기 때 쌓지 못한 애착 관계를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 매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상담보다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불필요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부모-자녀 관계가 친밀해야 훈육도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훈육보다 관계가 먼저다.


결국 상담은 보호자의 따뜻한 돌봄과 관심, 애정과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이의 변화를 위해 결핍된 시간만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고통이 따르지만 아이마다 다른 변화의 시기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자녀 양육은 사랑과 기다림이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