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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l 23. 2022

소진될 때 극복하는 마음가짐

교육복지사가 알아야 할 소진을 대하는 태도

며칠 전 엔진 오일을 교체하러 카센터에 갔다. 사실 교환 시기가 한참 지났다. 어물쩡 2만 킬로를 탈 것 같아 서둘러서 온 것이다. 엔진 오일은 5~7천 킬로를 타면 교체해야 한다. 어영부영 미루고 미루다가 1만 킬로 넘게 다. 엔진이 눌어붙지 않았으니까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돈 쓸뻔했다.


자동차가 망가지지 않으려면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교환 주기에 맞게 소모품을 교체해줘야 한다. 기계도 그러한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계처럼 누구나 소진되기 전에 마음을 챙기고 재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복지사는 주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 좋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린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당사자와 그 밖의 어른들의 요구를 듣는다. 이때 말하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감정 이입한다. 일해보니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천배 더 어려웠다. 당사자의 부정적인 생각과 상황에서 희망을 찾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한다. 문제에서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 강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교육복지사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것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 노동자이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 소진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한다. 어느 선생님은 상담 일을 하는 신랑도 가끔 힘들어한다며 소진은 좋아하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소진을 걱정한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하고 씩씩하게 있어도 른 사람 보기에 감춰지지 않는가 보다. 소진은 불현듯이 찾아왔다. 


대체로 성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받는다. 아동·청소년들에 비하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 하지만 보통 아동·청소년들은 문제가 터진 뒤 보호자나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이나 교육복지실에 온다. 자신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다. 비자발적인 아이들과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또 문제는 어찌나 다양하고 얽히고설켜 복합한 지 대부분 하루 이틀 상담받아서 될 일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한 해가 지나가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의 심리·정서적인 부분을 다루고 학교생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당사자와 협력한다.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관심이 없다. 동기가 부족하거나 그럴만한 능력 또는 힘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보호자는 자녀 문제에 무관심하다. 되레 아이나 친구 또는 학교 탓을 한다. 자녀 문제나 변화를 위한 부모 역할에 비협조적이다. 오히려 상담을 방해하기도 한다.


아이가 변하지 않거나 보호자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느끼는데, 이때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쏟는 노력에 비해 별다른 성과가 없다 보니 교육복지사에게 소진은 필연적이다. 거기에 학습 능력만 신경 쓰는 교사들의 무관심과 비협조적인 태도, 불필요한 서류와 부당한 업무 분담, 성과 주의 평가, 권위주의적인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 더해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교육복지사에게 소진은 불가피하다.


학교는 지금 방학 중이거나 방학을 준비하고 있다. 중학교는 지난주에 방학을 했고 우리 학교는 다음 주에 한다. 방학은 소진되기 전에 지금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텅 빈 학교에서 일하지만 싫지 않은 이유다. 다음 주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보니 재충전이 필요한가 보다.


방학이 되면 숨 가쁘게 달려온 1학기를 돌아보고 반성을 한다. 바둑을 복기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만나면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아쉬움 점을 찾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잘된 점을 평가한다. 보통 상담 일지, 가정 방문일지, 학생 별 개인 파일, 사례관리 등을 정리하며 갖춰야 할 서류를 작성하고 보완한다. 하지만 방학 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마냥 쉴 수 없다. 틈틈이 2학기에 진행할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매년 시도교육청에서 서류 검사하러 현장 점검을 하는데 올해는 현장 점검을 하지 않는다. 휴~ 몇 년 만인지.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하게 생겼다.


# 욕심을 버리거나 기대를 낮추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아이들이 의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한다. 이상적인 목표의 달성은커녕 도달하기도 힘들다고 마음속에 염두해야 한다. 오랫동안 방임이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때는 부모로부터 따뜻한 돌봄, 인정이나 칭찬, 격려를 받아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옴 둘 바를 모른다. 관계 맺기에 서툰 것이다. 또한 새로운 일, 변화를 위한 노력에 관심 없을뿐더러 실패할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미리 포기하거나 회피한다. 결과와 평가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변화는 아이들 몫이다. 변화시키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앞서서 기대하지 말자. 아이들을 이끌지 말고 발걸음을 맞추거나 뒤따라가자. 그저 아이들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싹은 움튼다.   


# 결과보다 과정에 목표를 두자

아이들의 변화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달성 정도를 파악하려면 평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쫀쫀한 평가는 오히려 아이들과의 협력적 관계를 망쳤다. 공들였던 관계가 한순간에 틀어진다. 아이들을 만나보니 목표의 달성 여부에 몰두하고 집착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튕겨져 나갔다. 김현수 저자 [무기력의 비밀] 책에서 "평가에 목표가 있을 때보다 흥미에 목표가 있을 때 훨씬 높은 성취를 보인다."라고 했다. 과정안에서 아이들이 재밌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과정이 즐겁다 보면 어느덧 기대하는 목표치에 다다를 것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의 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하자

결과를 내려놓으니 아이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아이가 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면 아이들은 "차라리 안 하하고 말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변화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한다. 목표가 높고 자기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 부족함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움직이려면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레벨 업하고 싶어 한다.


잦은 지각과 결석하는 아이와 "1교시 이전에 등교하기" 목표를 세웠지만 그마저도 잘 안돼서 "등교하는 시간과 상관없이 등교하기"로 목표를 낮춰보기도 했다. 아이는 오히려 다시 해보겠다며 "1교시 이전에 등교하기" 목표를 유지했다. 할 수 있는 일을 작은 단계로 쪼개고 쪼개 성공하게 도왔다. 애초에 큰 목표를 세워 실패하고 포기하느니 작은 목표를 하나하나 성취하며 자신감을 쌓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 기다림은 숙명이다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추자. 김현수 저자 [무기력의 비밀] 책에서 "무기력한 채로 오래 지낸 아이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나려면 무기력하게 지낸 시간만큼이나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움직였다가도 다시 무기력하게 지내기를 반복했다. 문제 행동이 일정 패턴에 따라 반복되지 않고 들쑥날쑥 이어졌다. 내일 오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아이가 다음 날 등교하지 않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설명 못한다.


아이의 작은 변화를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이 다르듯 아이들마다 변화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다르다.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추자. 서두를 필요 없다. 교육복지사에게 기다림은 숙명이다.


사실 아이들에게 뺏긴 에너지는 아이들을 만나 다시 얻는다. 아이들은 9년 동안 교육복지사의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동력이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면 덩달아 즐겁다. 아이들이 "복지 샘"이라고 부르며 교육복지실 문을 열 때마다 존재의 이유를 깨닫다. 방학은 소진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잠깐의 거리 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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