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사회복지사 Jul 06. 2020

아이를 위한 첫 결정, 아이 이름 짓기

부모님은 오성이라는 이름이 사주가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곧장 이웃집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로 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가게로 갔다. 부모님은 낯선 어르신과 함께 있었다. 길게 늘어트린 수염, 상투 튼 머리와 갓을 한 모습에 흠칫 놀랐다. 당황하며 어정쩡하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은 쭈뼛거리며 인사하던 나를 보고 “인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라며 혼냈다. 그날부로 현승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      


“사주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버지와 첫째의 이름을 짓다가 말다툼이 오고 갔다. 아버지는 아이의 성공을 위해 사주 풀이가 좋은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고 했다. 어찌 성공이 좋은 사주 하나 때문이겠는가. 사주가 좋은 이름으로 지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아버지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사주를 고집하는 아버지가 불편했다. 그까짓 이름 짓는 게 뭐라고. 


“사주가 좋지 않으면 성공을 못 해”    


아버지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의 앞날을 단정했다. 성공하려면 사주가 좋은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와 상의해서 아이 이름을 짓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되레 버럭 화를 냈다. 역정 낼 일인가 아버지의 반응에 서운했다. 믿고 맡겨주지 않는 아버지가 섭섭했다. 결국 참다못해 아버지에게 쏟아붓고 말았다.        


“성공한 사람이 다 사주를 봤을까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사주를 안 봐서 그렇겠네요?” 아버지에게 한마디 똑 쏘아붙이며 되받아쳤다. 순간 거실 공기는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오히려 아이가 성공하려면 사주 좋은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며 역정을 냈다. 아버지는 되레 사주와 상관없이 이름을 짓는다고 핀잔을 줬다. 너처럼 자식 이름을 막 짓는 게 아니라고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주와 한글 발음, 한자 뜻, 음양오행의 조화, 한두 가지 맞춰서는 완벽한 이름이 아니다, 사주가 좋아야 자녀가 성공하는 거야.”라며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건지 작명소에 앉아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몇 주 후 아버지는 손바닥만 한 종이를 보여줬다. 아버지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작명 책을 보여주며 손자를 위해 공부했다며 자랑했다. 순간 숨이 턱턱 막혔다. 얼마나 썼다 지웠으면 종이가 누더기가 되어 있을까. 아버지는 종이를 보여주면서 어떤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질문은 내 생각과 의견을 묻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 마음속에 이미 정해둔 이름이 있었다. 아버지가 보여준 이름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음에 든 이름을 밀어붙이고 나는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다시 보여줬다. 이게 무슨 일이야. 뒷면에 “유호”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보지 못한 이름이다. 아내도 나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는 “유호” 이름이 100% 좋은 사주가 아니라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출생 신고는 태어난 날로부터 한 달 이내 해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첫째 이름을 유호로 짓기로 밀어붙였다.


유(維), 호(鎬) 한자 뜻을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손자의 성공을 바라는지 알 수 있다. 호의 한자 뜻이 중국 주나라 발생지라고 한다. 뜻풀이하자면 세상의 지도자가 되라는 뜻이다. 어쨌든 사주 풀이만 보면 첫째는 크게 될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아들 이름 짓다가 부자지간만 나빠졌다. 아버지와 오갔던 불편한 감정을 떠올리면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그 당시에는 왜 그리 모진 말로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빌려 아버지에게 죄송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유호”라는 좋은 이름을 지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   


사주 좋은 이름이 중요한가. 아무리 사주 좋은 이름이라도 사주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주가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성공과 행복한 삶은 사주보다 이름 뜻처럼 키우려는 부모 역할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어쨌든 아이 이름 짓기는 힘든 세상에 잘 살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었다. 

이미 지호는 아버지 마음에 탈락한 이름이었다


이전 04화 DNA의 힘, 어쩜 이런 것까지 빼다 박을 수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