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사회복지사 Oct 20. 2022

DNA의 힘, 어쩜 이런 것까지 빼다 박을 수가!

“애들이 엄마, 아빠를 쏙 빼다 박았네요.”        

  

사람들이 첫째를 보고 영락없이 아빠를 빼다 박았다며 놀라워한다.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하는 게 치명적인 함정이랄까. 사람들에게 “제 아들이 아니에요.”라고 속이지 못한다. 누가 봐도 나의 아들이다. 빼다 박았다.  

    

두 아들이 크면서 점점 아내와 나를 닮아간다. 신생아 때 사진을 보면 누구 아들인가 싶지만 두 아들이 젖살이 빠지면서 숨어있던 아내와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함께 서로의 모습을 찾느라 바쁘다.      


“여기는 오빠를 닮았네!”, 

“여기는 당신 닮았네!”      


DNA의 위력이랄까. 첫째 아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뜯어보면 나를 닮았다. 소름 돋는다. 클수록 점점 더 닮아간다는 것이 문제인데,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아내는 둘째의 눈이 자기를 닮았다고 싫어한다. 아내는 지금도 “쌍꺼풀이 없는 오빠 눈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한다. 그뿐인가 아내는 저주도 서슴없이 퍼붓는다. 아직 젖살에 드러나지 않는 두 아들의 턱을 보고 지금부터 난리다. 어느 날 아내는 두 아들이 사각턱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무슨 내 잘못인가.” 사각턱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어찌 마음대로 될 일인가. 의지와 상관없이 닮은 걸 어떡하라고. 


두툼하고 두꺼운 손과 발     

두 아들은 엄지발가락이 중지 발가락 길이보다 길다. 엄지발가락은 똥 짤막하게 생겼다. 엄지발가락만 봐도 영락없이 ‘전 씨’ 가문의, 나의 아들이다. 발볼이 큰 것도 닮았다. 아무래도 두 아들도 신발 살 때 고민하게 생겼다. 발 길이에 맞추면 볼이 꽉 끼는 느낌에 답답하고 그렇다고 발볼 크기에 맞추자니 사이즈가 실제 발 크기보다 커져서 걸을 때마다 헐렁거려 불편하다. 발 사이즈보다 큰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몰라도 신발 앞꿈치 부분이 턱에 걸린다. 항상 신발 앞꿈치 부분이 긁혀있고 더럽다.    

  

짤막한 손도 닮았다. 손가락은 짧고 손바닥은 넓적하고 크다. 손이 거칠고 두툼하다. 분명 누가 봐도 피아노 치는 쭉쭉 뻗은 고운 손은 아니다. 악기를 다루는 것보다 삽질이 더 잘 어울리는 손이다. 아무래도 손가락이 짧은 두 아들은 악기 배우는 것이 불리할지 모르겠다. 평발로 축구를 한 박지성이면 몰라도.     


#토끼 이빨처럼 큰 치아와 삐뚤어진 앞니     

둘째 아들의 가운데 앞니는 V자 모양이다. 두 치아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입 안쪽으로 향해있다. 어찌 V자 모양으로 삐뚤어진 앞니 모양까지 닮았을까. 놀라운 것은 모양뿐만 아니라 크기도 닮았다. V자 모양은 나의 아버지, 앞니 크기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가져간 게 틀림없다. 두 아들에게서 부모님의 모습까지 찾아볼 때면 유전자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왕 찾은 거 더 찾아보자. 당신도 아이와 닮은 점을 더 찾아보라.


절벽 같은 납작한 뒤통수에 비뚤어지기까지     

납작한 뒤통수까지 닮았다. 나의 뒤통수는 마치 가파른 절벽 같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발비를 아끼려고 바리깡으로 6㎜에서 12㎜로 밀고 다녔다. 절벽에 가까운 뒤통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등학생 때 머리발이 안 서서 창피했었는데 아들 역시 외모에 민감할 나이에 머리발로 고민하게 생겼다. 굳이 좋은 점을 꼽자면 아들도 베개 없이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잘 수 있겠다.     


둘째는 절벽 뒤통수에 머리도 한쪽으로 비뚤어졌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살짝 찌그러진 삼각형 모양이다. 신생아 머리는 만지는 대로 만들어진다지만 둘째는 아무리 자는 머리 방향을 바꿔도, 예쁜 두상을 만드는 베개를 사용해도 소용없었다. 둘째 머리 모양만큼은 노력으로 DNA를 이길 수 없었다.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     

설마 탈모는 아니겠지? 두 아들도 탈모 때문에 고민하게 생겼다. 아버지도 머리숱이 적고 머리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할아버지도, 심지어 외할아버지도. 우스갯소리로 탈모는 한 대를 건너뛰어 나타난다고 하지만 슬프게도 피할 길이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탈모만큼은 즐기지 못할 것 같다. 아내는 잊을만하면 “둘째 머리카락이 영락없이 오빠야.”라며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들, 의료 기술 발전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자.” 탈모 약이 건강보험 적용 확대가 대선 공약이 되는 시대에 살지 않나. 두 아들이 크면 탈모쯤이야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유전자가 화룡점정이 아니길 빌 뿐이다. DNA여 제발, 부디.     


아이는 부모의 거울     

자식은 부모를 빼다 박는다. 무심코 거울을 보다가 아버지 모습이 겹쳐 보일 때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와 행동까지도 닮았더라. 가끔 아이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보일 때가 있고, 아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새삼 느낀다.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서로를 비추는 것은 아닐까.     


부모는 자녀에게 유전자뿐만 아니라 삶의 패턴까지 물려준다. 아이는 타고난 기질을 바탕으로,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격이 만들어진다. 상대방이 웃으면 함께 웃는 것처럼 서로를 모방하고 학습한 결과다. 삶에서 적잖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모의 정서와 가치관, 행동 방식이 아이에게 대물림되거나 “죽어도 아버지처럼 안 살 거야.” 노력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당신 생애 가장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을 떠올렸다.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싸우는 소리에 숨죽이며 벌벌 떨고 있다. 2층 집인 것을 보니 7살 때다. 어릴 때 엄마 아빠의 크고 작은 다툼을 목격했다. 그렇지만 말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완고하다 못해 상대를 비난하고 무시했다. 무서운 분이었다. 어릴 때 슬픔과 두려움, 죄책감을 자주 느꼈다. 어린 시절 부모님 관계의 영향이었는지, 크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분노했고 “어차피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데” 하는 생각으로 입을 닫았다. 귀신같이 남 눈치만 살피는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컸다. 어른이 돼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른 것이 불편해서 나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살았다. 


가끔 아이들을 대할 때 아버지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규칙과 예의에 엄격하고 가끔 말을 듣지 않으면 완력으로 통제하기도 한다. 자기표현에 서툴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지 못한다.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 나쁜 감정을 그때그때 흘려보내야 하는데 참다 참다 폭발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이들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아이도 나도 상처가 되었다.      


그렇다고 부모 탓만 할 수 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끓어야 한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삶의 패턴 즉, 생활 방식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성격, 가치관, 삶의 패턴을 단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부모를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하다 보면 기필코 성장하리라. 아들러는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당신을 어떤 아빠로 기억하길 바라는가?”     


아이들은 나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아빠로 기억하며 추모할까. 친구처럼 재밌게 놀아주는 아빠, 고민 있을 때 다가가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아빠. 엄마를 아끼고 사랑한 아빠, 무엇보다 “자기를 좋아하고 아낌없이 사랑한 아빠”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아이가 어떤 아빠로 기억하길 원하는지 셀프 질문한다면 악순환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이전 03화 일장춘몽, 2주 산후조리원 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