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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Jun 26. 2020

첫아이를 맞이하는 고통과 기쁨

  2016년 5월 18일 18시 36분 자연분만으로 첫째가 태어났다. 지난 첫아이의 임신과 출산을 떠올리면 기쁨과 감격의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임신 10개월 동안 바란 건 부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소원이 없겠다였다. 동전의 양면처럼 첫아이 임신과 출산의 기쁨과 감격 뒤에는 그에 따른 대가가 뒤따랐다.


  첫아이라 그랬을까, 임신 10개월 동안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일찍이 임신 4개월부터 위기였다. 의사 선생님은 다른 산모에 비해 아이가 밑으로 내려온 상태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초음파 영상을 봐도 자궁 입구 쪽 가까이 있었다.


  그 덕에 보통 산모와 달리 내진검사를 받는 시기도 남달랐다. 내진검사는 임산부 상태에 따라 검사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보통 임신 막달에 하는 검사다. 내진검사로 산모가 출산할 준비가 됐는지, 아이가 얼마나 내려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출산을 앞두고 받는 산모도 있는데 아내는 조산의 위험으로 임신 4개월부터 받았다.


  아내는 내진검사가 달갑지 않다고 했다. 내진검사는 1~2분 정도면 끝나는 간단한 검사였다. 하지만 금방 끝나는 검사에 비해 불쾌한 느낌, 수치심은 오래간다고 했다. 아내는 장갑 낀 의사 선생님의 손과 검사 도구가 자기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만큼은 거북해서 싫다고 했다.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상상하다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항문 검사 때 느꼈던 수치심에 비할까 싶지만 적어도 치욕스러운 감정은 느끼지 않았을까. 내진검사를 마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내를 보며 미안했다. 아내는 엄마가 되기 위해 수치심도 극복해야 했다.


  아내는 임신 후기에 접어들수록 잦은 배 뭉침으로 힘들어했다. 임신 배 뭉침은 임신 중 자궁이 수축하면서 갑자기 배가 돌처럼 단단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임신 막달이 될수록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증상이지만 아내는 조산 위험으로 배 뭉침이 잦았다. 하는 수 없이 임신 막달에나 한다는 태동 검사를 진료할 때마다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태동 검사를 할 때마다 얼마나 긴장되던지 혹여나 아이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는 입덧으로 먹덧이 왔다. 굳이 입덧과 먹덧을 고르라고 하면 먹덧을 고르겠다. 음식 냄새만 맡으면 헛구역질을 하고 음식 냄새가 역겨워서 못 먹는 것보단 차라리 먹덧이 나았다. 보는 사람 입장은 그렇지만 아내는 둘 다 곤욕이라고 했다. 아내는 속이 울렁거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먹는 것으로 풀었다. 마이쥬, 아이셔, 새콤달콤, 자극적인 라면 국물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멋덧의 부작용으로 막달 체중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체중이 급격히 늘었던 아내는 팔과 다리가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팅팅 부었다. 그 당시에는 아내도 나도 임신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첫아이라고 해도 임신 중독증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부종까지 오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은 출산 전 무통 주사를 놓을 혈관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은 당황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답답하던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의 웅크린 자세를 몇 번을 바꿔가며 긴 주삿바늘을 아내 등에 꽂아댔다. 무려 열다섯 번이나 찔렀다고 했다. 얼마나 찔러댔으면 바늘이 휘어졌을까. 진통과 함께 만신창이가 된 아내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침실에 누워있었다. 결국 무통 주사를 놓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고 아내는 출산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지금도 아내는 그때를 떠올리면 치를 떤다.


  출산 후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는 이미 출산이 가까워지면 자궁 수축이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그 간격도 짧아진다는 진진통까지 참은 상태였다. 아내는 출산 당일 자정부터 진통을 참았다고 했다. 아내는 점점 심해지는 통증을 느끼면서 나를 깨우지 않고 어금니 깨물며 참았다고 했다. 아내는 다음 날까지 일하는 내가 신경 쓸까 봐, 퇴근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려고까지 했으니 아무런 일이 안 났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역죄인이 될뻔했다. 


  출산 당일 오전 10시쯤 다급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전화번호를 보자마자 뭔지 모를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빠 피나.” 아내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차하려고 하는데 아내는 이미 출산 준비로 미리 싸놨던 30인치 캐리어를 계단으로 끌고 내려와 있었다. 아내도 나도 첫아이라 가능한 일이다. (여보, 그때는 당신과 내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렇지?)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마치고 분만실에 들어가 출산 준비를 했다.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가족 분만실로 들어가서 짐을 풀고 아내에게 병원복을 건넸다.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니 이제 정말 출산이구나 싶었다. 그제야 출산이 가까웠다는 것을 실감했다. 화장기 없는 푸석푸석한 아내의 얼굴은 누가 봐도 출산을 앞둔 산모였다.     


  분만실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지날 때쯤 아내의 자궁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자궁문이 열릴 때마다 아내는 진통에 고통스러워 했다. 아내의 숨은 가빠지고 진통을 참으려고 이를 윽물었다.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내 옆에서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비참했다. 아내 대신해서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가빠지는 아내의 숨소리에 덩달아 흥분됐다.


  진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아내는 악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내가 얼마나 힘을 줬는지 부여잡은 침대 난관 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출산할 때 내지른 아내 비명과 신음소리는 나의 멘탈을 마구 흔들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곧 출산이구나 싶었다.           


“보호자 분은 밖에서 기다리세요.”      


  간호사가 곧 아이가 나올 것 같으니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아내를 남겨두고 분만실을 나서는데 얼마나 긴장되고 손에서 땀이 나던지, 병실 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성거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숨죽이며 기다리는데 숨 막히는 긴장감을 뚫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크게 울렸다. 갓난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건강하게 태어났구나 싶어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안심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10개월 동안 전전긍긍 애태웠던 마음을 한순간에 녹였다.     

 분만실 안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간호사가 “탯줄을 잘라야 하니 이쪽으로 오세요.” 말했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의료용 가위를 건넸다. 의사 선생님은 “한 번에 자르면 돼요.” 시크하게 말했다. 의료용 가위를 건네받은 손이 어찌나 덜덜 떨리던지,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어도 소용이 없었다. 가위질을 여러 번 했지만 좀처럼 탯줄이 잘리지 않았다. 아마 고무줄 100개를 한 번에 자르는 느낌이랄까. 탯줄이 타이어처럼 질겼다. 지금도 첫째 탯줄을 자르던 순간이 가장 강열했다.     


  간호사는 작은 욕조에 물을 채웠다. 간호사가 눈도 못 뜨는 핏덩이를 안아서 보여줬다. 온몸이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가득했다. 솔직히 핏덩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태지를 보고 내 아이인가 싶었다. 핏덩이를 건네받는데 심장이 몸 밖에서 뛰는 것처럼 심장 소리가 귀에 들렸다. 온몸이 핏덩이인 아이를 씻기는데 어찌나 손이 바들거리는지. 아들을 안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는 어찌할 수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태지 가득한 아들의 몸을 조심스럽게 씻겼다.     


  첫아이 출산을 돌이켜보니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가족 분만하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의 순간에 아내 옆을 지켰다는 것,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는 것,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른다. 그 찰나를 놓쳐 평생 후회하는 아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날 남편으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는 기쁨이 컸다. 생각해보면 첫아이 맞는 고통은 한순간이었으며 감격은 오래 남았다.     


여보! 그리고 달콩아, 모두 “애쓰고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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