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은 선과 악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덜 아름다움 또한 선과 악이 아니다. 남의 세치 혀에 속아 사과 따위에 농락 당했다해서 남과 사과를 탓할 수는 없다.
백설공주가 그를 시기 질투한 왕비를 정당방위라 하더라도 위해를 가하였으니 그녀를 죽이려 한 왕비가 악한 건지 그녀가 악한 건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선과 악은 극한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해하였다면 나를 지켰으나 상대방에게 해를 끼쳤으니 악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악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왕비에게는 아름다움이란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였고 그 가치를 앗아간 백설공주의 존재는 그녀에게는 삶의 가치를 위협할 정도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런 자기보호본능에서 나오는 반사행동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악행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해 병적인 강박을 가진 이의 자신을 지키려는 선한 행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의 법은 선과 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질서를 판단할 뿐이다. 우리가 아는 선과 악은 우리가 아닌 신의 기준으로 명분으로 나누어 두었다. 종교의 기준으로 나누어 둔 선악의 기준을 굳이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잣대로 삼지 않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나를 위한 어떠한 선한 행동도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진출처 - 발레 'Snow White'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