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날이 갈수록 멍해지고 있다. 뭔가를 자꾸 잃어버리고, 실수를 해서 허둥대고, 평생 쓸 것처럼 호언장담하고 산 물건들을 환불한다. 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연애를 할 시절에 꽉 막아놨던 봉투가 몽땅 풀려버린 느낌이다. 엄마 말로는 원래가 덜렁댔던 앤데 그 모습을 드디어 남편에게도 보여주고 있는 모양이라고.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온가족 연말정산 쯤은 나 혼자서 거뜬히 처리하곤 했는데 물 건너와서 삶의 방식이 바뀌어서 그런지 우체국 하나만 가려고 해도 두려움부터 앞선다. 젊음과 패기로 똘똘 뭉친 지난날의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허구한 날 실수만 하고 남편 뒤에 숨는 진정 덜렁이 여사로 거듭났다. 나 스스로도 경악했었던 웃지 못할 사건이 한 두개가 아니다. 특히 자동차에 관련된 건 왜 이렇게 허둥대는건지. 그 중에서도 남편이 절대 잊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나를 놀리는데 써먹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오빠 나도 내가 이런 소리하는게 말도 안된다는걸 알고 있는데…….”
“뭔 소리야?”
“아니, 이거 차가 갑자기 뒤로 안 나가. 고장났나봐. 분명히 R(후진기어)에 놨는데……. 어떡하지?”
“엥? 무슨말이야? 기어를 잘 놨는데 왜 안나가?”
“몰라. 나 어떡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미국에서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저녁 9시에 시작하는 사설 미술 교습에 다녔었다. 그 날도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조수석에 잔뜩 싣고 일찌만치 제일 구석에 주차해뒀었던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없이 뒤로 후진이 잘 되던 차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 것이다. 혹시 몰라 D(전진기어)로도 바꿔봤는데 앞으로는 잘 나갔다. 처음에는 혼자서 해결을 해 보겠다고 차 밖으로 나가서 바퀴 네군데를 샅샅히 뒤졌지만, 도대체가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었다. 밤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앞쪽은 바로 낭떠러지라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한국처럼 한밤중에 사설 주차장에서 도움을 부른다고 어떤 서비스도 쉽사리 와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공포스러웠다. 수강생들은 하나 둘 먼저 떠나서 이 넓은 주차장에 남은건 나와 이 검정색 차량 한대뿐.
“어라?”
“왜 그래?”
“아… 아니.. 미안, 악셀 밟으니까 가네.”
“뭐? 뭔소리야..”
“아니 그게… 나는 자동으로 기어만 바꾸면 자동차가 나가는줄 알았지뭐.”
“………뭐?”
“여기 경사가 좀 져있어서.. 그래서 안나갔나봐.”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