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Mar 24. 2020

한국사람에겐 ‘한국말 말차림’이 있다

한국말 말차림법 1강

한국사람에겐 ‘한국말 말차림’이 있다

어제 디자인학교에서 최봉영 샘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아주 소수의 인원만 참가하고 대부분의 학생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화상회의라 화면에 얼굴도 나오고 소리도 나오도록 만ㄴㄴ들었는데 정작 학생들은 얼굴과 소리가 드러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몇번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낌점은 굳이 서로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얼굴이 나오면 서로의 얼굴보다 각자의 얼굴을 보기 바쁘다. 거울을 보면서 수업을 듣는 어색한 상황이랄까. 얼굴 화면이 오히려 수업 진행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유튜브에 익숙한 세상이라 그런지 채팅만으로 충분히 소통된다. 목소리도 옵션이다. 문자메세지가 일상의 소통수단이기에 의견이던 질문이던 오히려 문자가 편하다.


이렇듯 온라인수업은 오프라인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수업을 디자인 개념으로 본다면, 오프라인 상황을 온라인에 대입해 수업을 디자인하기 보다는 온라인 세상에서 소통되는 상황들을 배려하면서 디자인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수업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최봉영 샘의 수업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국사람은 어릴때 말을 배운다. 말을 배울때 문법을 통하지 않는다. 문법은 말을 배우고 나서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울때는 다르다. 문법을 먼저 배우고 말을 배운다. 그래서 말이 문법에 갇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이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사람은 말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말이 차려진다. 선생님은 이를 '말차림'이라고 말한다. 문법은 이 자연스러운 말차림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문법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한국말문법은 일본말문법을 따라 만들었고, 일본말문법은 영국말문법을 번역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말은 굴절어이고 한국말과 일본말은 교착어이기 때문에 말의 형식과 내용자체가 다르다. 가령 "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영국말로 "I have a headache"이다. 한국말은 나에게 딸려있는 머리가 아픈 것인데, 영국말은 이를 '나는 머리아픔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영국말과 한국말은 형식도 내용도 다르다. 그래서 영국말문법을 참고만 하면 되지, 그 문법을 그대로 가져와 한국말 일본말 문법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120년전 일본학자들은 영국말 문법을 거의 그대로 적용해 일본말 문법을 만들었고, 한국학자들은 이를 의심하지 않고 일본말 문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야 한국말 문법으로 삼았다. 그래서 한국-일본말 문법은 한국 말차림과 전혀 맞지 않게 되었다. 더 놀라운 점은 120년동안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사람에게는 한글이 있다. 세종대왕은 한국사람으로서는 드물게 한국사람에게 한국말 말차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말에 가장 적합한 글자를 만들었다. 한국말차림에는 '말소리차림' '말뜻차림' 크게 두가지가 있다. 세종대왕은 이중 말소리차림을 집중적으로 묻고 따져서 한글이라는 글자차림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글자를 만들때 한국사람의 자연스러운 말을 최대한 배려했다. 때문에 한글은 한국말차림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그래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말들이 한글로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것이다.


세종대왕이 말소리차림으로 글자차림을 만들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말뜻차림이다. 최봉영 샘은 여기에 사명감을 갖고 계신다. 말뜻차림을 배려해 한국말차림, 즉 한국말 말뜻차림에 적합한 한국말 문법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셨고 결국 만들었다. 선생님은 한국말에 자연스러운 한국말문법을 만들기 위해 '문법'이라는 번역된 일본식 한자어를 써야할지 많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국 '문법'을 '차림'이라는 말로 바꾸셨다. 그러니까 '한국말 문법'은 '한국말 말차림'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그래야 한국사람의 한국말차림을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으니까. 마치 한글처럼.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차츰 익숙해지면 문법보다 차림이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올것이다. 차림은 그 자체로 한국말이니까.


선생님은 영국말차림과 일본말차림을 비교하면서 subject와 verb, object를 하나하나씩 묻고 따졌다. 이를 통해 주어, 동사, 목적어라는 번역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셨다. 나아가 이 말들을 새롭게 번역한 한국말을 소개해 주셨다. subject는 '곧이말', object는 '맞이말', verb는 '지님말'이다. subject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한 말의 주제다. 곧이말의 '곧'은 우리가 흔히 "이것은 곧 무엇이다"이라 말할때 쓰는 '곧'이다. 즉 말하는 사람이 의도하는 주제를 한국사람들은 '곧'이라 말하기에 subject눈 곧이말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object는 subject가 대상으로 삼거나 함께하는 말이다. 그래서 object는 subject를 마주한다는 의미에서 '맞이말'로 부르면 좋다. 마지막으로 verb는 subject의 행동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동사처럼 행위만을 지칭하는 용어보다 일이나 꼴, 것(이)를 지닌다는 의미에서 '지님말'이 더 적합하다.


이렇듯 한국말 말차림(문법)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형식과 내용, 이를 지칭하는 용어까지 완전히 새롭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말을 잘 살펴 말차림을 디자인해야 하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나는 이 수업이 한국말 말차림 디자인 수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수업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물론 수업에서는 더 자제한 내용이 오갔다. 선생님은 수업내내 '올라타는 인문학'과 '들처업는 인문학'을 비교하셨다. 올라타는 행위는 상대를 말처럼 엎어놓고 그 위에서 강요하고 억압하는 인문학이다. 올라탄 사람은 두 손과 머리가 자유롭다. 반대로 깔린 사람은 두 손 두 발이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들쳐업는 행위는 업는 사람이 두 손으로 업힌 사람을 받쳐야 한다. 업힌 사람은 두 손과 머리가 자유롭다.


나는 크게 반성했다. 지금까지 나는 외국의 생소한 개념들을 가져와 사람들 위에 올라타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수업내내 자신은 업어가는 인문학을 하기 위해 여러분을 만났다고 강조하셨다. 업어서 가다가 어느정도 이해에 이르면 내려놓고 함께 가고 싶다며. 우리는 당분간은 선생님 등에 업혀 가야할 듯 싶다. 처음에는 다 업혀서 선생님이 힘겨우실 것이다. 하지만 한명씩 내리면서 부담을 덜게 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거라 확신한다.


이제 14번의 수업이 남았다. 다음주에는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업어주실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고맙습니다.

이전 01화 머리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