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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r 31. 2020

곧이말과 맞이말

한국말 말차림법 2강

두번째 온라인 강의다.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마이크와 영상 연결에 다소 문제가 있다. 다행이 정연두 작가님이 지나다 들리셔서 여러 조언을 주셨다. 다음주부터는 준비과정과 관리를 조금 더 간결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차차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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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한국말 말차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먼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머리 속에 '말차림'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차림은 자연스럽게 차려진 것이다. 그래서 이 말차림에 맞는 한국말 말차림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문법을 그대로 베낀 현재 한국말 문법은 한국말 말차림에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면 일본문법도 일본말 말차림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문법은 일본말이 아니라 영국말 그래마(문법)을 번역해 강제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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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Subject는 주어가 아니라 곧이말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했다. '곧'은 시공간, 즉 때와 곳을 가르키는 말이다. 우리가 "이것이 곧 무엇무엇이다"라고 말하듯 '곧'은 말하는 사람이 최초로 정하는 주제나 대상이다. 그러면 이 주제에 따른 맞이말=obiect와 지님말=verb가 따라 나온다. 가령 "나는 사과를 먹었다"라고 말할 때 "나는"은 말하는 사람이 정한 곧이말이고, "사과를"은 곧이말과 대응하는 맞이말, "먹었다"는 "나"와 "사과" 사이에 일어난 일을 지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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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지님말에는 시제가 있다. 과거는"먹었다"이고, 현재는 "먹는다"인데 미래는 "먹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특이한 점은 한국사람은 미래의 일을 말할때 "것"이라는 말을 추가한다. 왜냐면 한국사람에게 "일"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일어난 것들만을 "일"로 보기 때문이다. 미래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이 아니라 "것"이라 말한다. 그럼 "것"은 뭘까? "것"은 한국사람이 인식한 외부의 존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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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 "이것이 책이다"라고 말할때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인식한 외부의 순수한 존재다. 그리고 "책"은 말하는 사람의 머리속에 차려진 이름이다. 말하는 사람은 "것"과 "책"을 대응시키기 위해 "이"라는 말을 앞뒤에 붙힌다. 그리고 "다"라는 말로 대응을 완성한다. 이 대응을 한국말로는 "여김"이라 말한다. 이때 "이"는 말하는 사람 가까이 있는 것을 감각한 실체이다. 그래서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실체로서 감각한 존재 그 자체이다. 말하는 사람이 "이것"이라고 말할때 듣는 사람도 "이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상대방이 그냥 존재가 있음을 인식했구나라고 여길 뿐이다. 말하는 사람이 "이것은 책이다"라고 말하면 그때 비로소 듣는 사람은 "아 이사람이 이것을 '책'으로 여기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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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님말은 곧이말(이쪽)과 맞이말(저쪽)이 함께하는 상태이다. 한국사람에게 이 상태는 3가지가 있다. 꼴지님, 일지님, 이지님이다. "꼴"은 형태나 색 등 눈으로 본 감각이다. "일"은 운동과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앞서 "이것은 책이다" 문장처럼 존재와 존재의 대응을 의미한다. 이것은 책이다를 영어로 말하면 "This is a book"이다. 영어에서는 subject 이쪽과 저쪽 대상을 'is'로 대응시킨다. 그래서 be동사에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과 대응을 의미하는 '다'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영어에서 이쪽과 저쪽이 되도록 정확하게 대응되어야 한다. 마치 수학의 "="처럼. 그래서 this라는 단수와 a book이라는 단수가 나온다. 대응되는 대상이 books이면 앞의 sbject는 these 복수가 된다. is도 are로 바뀐다. 이것이 영국사람의 말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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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굴절어이고, 한국말은 교착어이다. 이 또한 한자로 된 모호하고 이상한 번역이다. 영어는 낱말로 이루어져 있기에 진주목걸이처럼 낱낱의 말들이 굴절되어 문장이 만들어진다. 한국말은 낱말옆에 토시(조사)가 붙어있어 이 토시가 낱말들을 연결한다. 이 토시를 아교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교착어라 말했다. 그래서 굴절어는 유연하고 교착어는 딱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국말도 잘 굴절된다. 때론 영어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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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할께요~"라고 말하듯 한국말은 '마디말'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는 앞뒤 두개로 구성되는데 앞의 말은 '앛말'이고 뒤의 말은 '겿말'이다. 가령 한국말로 "나는 학교에 간다"에서 "나" "학교" "가"는 앛말이고, "는" "에" "ㄴ다"는 겿말이다. 앛말은 최봉영 샘이 지은 말로, 한국말 고어에 '앛'은 씨앗, 뿌리, 바탕을 의미했다고 한다. 씨앗은 그 생물의 과거 정보가 모두 담겨있다. 이처럼 '앛말'은 말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인식하는 정보가 모두 담겨있다. '겿말'은 훈민정음에서도 나와 있는 말로, 옛사람들은 토시말을 말겿, 입겿이라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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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말은 총 15개로 구성된다. 어제는 이중 subject에 해당되는 '곧이-마디말'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셨다. 한국사람은 "나는 키가 크다"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subject가 두개 있다. 즉 곧이-마디말이 두개다. 한국문법에서는 이를 '이중주격'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최봉영 샘은 "나는"은 으뜸-곧이-마디말이고, "키가"는 딸림-곧이-마디말이라며, 딸림은 항상 으뜸에 속한 것이라 말한다. 즉 "키"는 "나" 안에 속한 것이다. "그는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할때 "머리"는 "그"에 속한 것이다. 한국말에는 곧이말들이 여러개 있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서울은 남대문의 김씨가게가 옷값이 가장 싸다" 여기에는 곧이말이 3개가 쓰였다. 이 곧이말은 가장 으뜸-곧이 "서울"에 속한 딸림-곧이 "남대문 김씨가게" 다시 그 가게에 속한 딸림-곧이 "옷값"이 차례로 나열된다. 역순은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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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마디말도 총 3개로 분류된다. 으뜸-곧이말, 딸림-곧이말, 얼임-곧이말. '얼임-곧이말'은 "나는 소리가 들린다"에서 처럼 나에게 얼여(지각된) 있는 '소리' 등을 가르키는 말이다. 내가 알기론 여기서 사람이나 동물 등을 지칭하는 '임자'냐 아니면 낙엽이나 의자 등 단순한 인식 '대상'이냐에 따라 더 분류되는데 학습분량을 의식하셔서인지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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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만이 아니라 모든 말은 몸의 감각자질에 기반한다. 이를 한국말로 '늧'이라 말한다. 이 늧=감각은 크게 5가지로 분류된다. 불교 유식학에서 이를 "안이비설신-색성향미촉'이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감이다. 사람은 이 오감을 인식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아는 것은 아주 작은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수천배 확대해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별도 그렇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은유'가 떠올랐다. 레이코프와 존슨은 우리가 추상적인 대상을 알려면 신체 경험과 연관된 말로 은유되어야 한다. 가령 "시간이 빨리 지나갔네"라고 말할때 추상적인 "시간"을 자동차나 기차 등 무언가 내 옆을 지나가는 대상으로 은유해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고 말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공통의 늧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통을 위해서도 늧=감각자질의 공통경험이 필요하다. 이렇듯 늧은 나와 너와 우리 혹은 사물이 관계를 맺는 자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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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이념보다 몸, 경험,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생님은 자본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늧을 부풀려서 사람들이 강력한 늧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성장했고, 포스트모더니즘만이 아니라 모더니즘이 주장하던 것들조차 상실되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나와 옆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한 분이 나즉하게 "이거 완전 철학수업이네요"라고 말해 빙긋 웃었다. 나는 선생님께 한국사람이 쓰는 말이 곧 한국사람의 철학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붓다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모두 자신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을 묻따풀(묻고, 따지고 풀고)해서 깨익배(깨닫고 익히고 배이는)를 추구했다며 우리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을 홍보할때 "자존감 수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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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정연두 작가님이 진심어린 소감을 얘기했다. 영어와 일본어를 배우고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며 겪었던 의문들이 상당수 풀렸다며. 모두 돌아가고 연두샘과 둘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 강의는 창작자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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