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셔츠에 반바지 나는야 기본 캐릭터라네

by 김단한

나는 줄곧 내가 게임 속의 '기본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기본 캐릭터'를 주제로 몇 번 글을 쓴 적도 있다. 요즘엔 게임의 그래픽이 워낙 좋아지면서 '기본 캐릭터'의 옷차림도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떠올리는 '기본 캐릭터'의 기본 옷차림은 흰 러닝에 딱 달라붙는 반바지, 그리고 맨발이 전부다. 피부색이나, 머리 색, 스타일, 심지어 눈동자의 색도 여러 가지로 바꿀 수 있건만, '기본'의 옷차림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룰인 듯했다. 게임 속 세상을 간편하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나는, '기본' 캐릭터의 맨발이 모래를 밟아 아프지는 않을지, 뜨거운 태양에 살이 러닝 자국만 남기고 까맣게 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곤 했다.


'기본 캐릭터'인 나는 그렇다 할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 제대로 된 신발을 신지도 못했는데, 스킬이 있을 리 만무. 맨주먹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기본'은 어쩌면 빵빵한 장비를 착용한 것보다 더 멋진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무언가를 집어서 던질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감사하게도 '기본'의 캐릭터는 몸이 의외로 탄탄한 편이라 더할 나위 없다. (현실의 나는 아직…… 복근이 뭐였더라.)


게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속한 '세상'에선 뛰는 체력은 알아서 키워야 한다. 무언가를 던지거나, 피하는 반사신경 또한 마찬가지다. 게임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체력, 그리고 빨간색으로 보이는 피, 노란색이나 가끔 다른 색으로 보이는 스킬이다.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눈으로 열심히 게이지를 훑어가며 적절한 순간에 몸을 사리고, 스킬을 써야 한다는 뜻인데……. 나는 지극히 '기본 캐릭터'라서 나의 스킬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고, 딱 한 번만 더! 하다가 죽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실, 나는 피, 체력, 스킬만으로 그곳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거기에 [감정] 같은 것이 더해졌다면, 나는 아마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을 것이다. 감정의 총합이 100이라 치면, NPC(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 플레이어에게 퀘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우미 캐릭터.)가 나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을 때 좌절하며 한 10점 정도 깎이고, 일일 퀘스트를 말끔하게 성공하지 못함에 있어서 한 50점 깎이고, 다른 캐릭터들에게 치였을 때 마음의 상처도 동시에 입어 한 40점 정도 깎이는 식으로. 그러니, 게임 세상에서의 '기본 캐릭터'는 [감정]이란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서 가끔 부럽고 그렇다.


신발을 사거나, 각종 옷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게임 속에서도 돈이라니 지긋지긋하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힐링하라고 만들어놓은 게임에서 한국인들은 우선 대출을 받아 집을 만들고, 대출을 갚느라 시간을 전부 보낸다고.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나의 '기본'을 가지고 꾸역꾸역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레벨업은 관심 없고, 집부터 짓는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게임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팔과 내 다리만 보이는 1인칭 게임, 혼자 하는 게임을 선호하는 나는 그곳에서 무조건, 일일 퀘스트를 살살 깨 가며, 공격자들과 그룹 신청을 걸어오는 이들을 피해 가며, 혼자 게임을 즐긴다.


꾸역꾸역. 혼자. 이 두 단어는 나를 표현하기에 지극히 올바르다. 나는 가끔 나의 '기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옷도 후줄근에, 가지고 있는 스킬도 몇 되지 않는 내가 필요한 곳이 있을까. 그래서 너무나 멋지고 빛나는 여러 장비와 아이템을 장착한 캐릭터들에 눈이 가고, 그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부러움'에 관한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기본 캐릭터'처럼 살아가는 나는, 지금부터 '기본'이라 대담할 수 있는 여러 부분에 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1인칭 게임에 빗대어서. 무서워도 용감하게 부딪히는 어느 '기본 캐릭터'에 대하여서. 나는 아직 살아남아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살아남는 법을 지극히 선명하게 익혀야 한다. 좋은 글도 쓰고 싶고, 매운 떡볶이도 매일 먹고 싶고, 좋아하는 음식과 맥주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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