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가방 안에 그것보다 작은 가방, 그 가방 안에 또 그것보다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친구들에게도 일명 '바리바리 스타'로 불리며, 별명에 걸맞은 행동을 일삼곤 했다.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커다란 백팩에는 필요한 것들이 잔뜩 들어있는 포화 상태니, 거기에서 쉽게 꺼낼 수 있어야 하는 지갑이나 휴대전화 같은 것은 작은 가방에 옮겨 담아 따로 메어주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출장을 가게 될 일이 생긴다면, 여기다가 캐리어까지 더해진다. 캐리어도 꽉꽉 담겨 아주 무겁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내가 찾는 모든 것이 가방에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안약부터 시작하여서 언제든지 배가 아플 때나 머리가 아플 때, 긴장했을 때 먹을 수 있는 약이 담긴 봉지까지 꼭꼭 챙겨야 한다. 그날 먹어야 하는 비타민이나 박카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책임져줄 책이나 이어폰, 안경, 렌즈, 휴지, 생리대, 메모지, 볼펜, 연필, 지우개, 거울, 립밤 등등 모든 것이 가방 안에 들어있다. 어깨가 묵직해야 비로소 마음이 놓아진달까.
게임상에서 지극히 '기본 캐릭터'의 나는 인벤토리 상자를 정리하는 것에 시간을 보낸다. 같은 기질을 띄는 것은 같이 두고, 똑같은 것은 겹쳐두는 형태로. 뭐, 그다지 정리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면서 꼭 나는 그런 식으로 한눈에 잘 볼 수 있는 인벤토리 창을 만들려 노력한다. 무언가 다 내 눈에 들어오고, 내가 확인할 수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살아갈수록 그렇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다.
게임상에서는 체력을 키워줄 수 있는 마법의 물병이라던지, 아니면 약초 같은 것을 챙겨 다닐 수 있다. 현실세계와의 인벤토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다. '기본 캐릭터'인 나는 체력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약초나 물병을 자주 챙겨야 한다. 읽을 책을 챙길 수는 없다. 그보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창이라던지, 새총과 같은 무기를 챙겨야 한다. 내 목숨을 새총에 맡기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일명 '게임적 허용'으로 이뤄지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사실, '기본 캐릭터'의 인벤토리는 너무나 창이 좁고 작아서 넣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것이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살아남기 위해 인벤토리를 채워야 한다면, 나는 조금 더 색다른 것으로 자리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 나는 가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뭇잎 하나만 가져와 줘'라는 말을 한다. 진심 반, 장난 반인 말이지만…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어 진짜로 나뭇잎을 가져온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그 말을 한다.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로 그곳의 나뭇잎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바람을 맞은 나뭇잎을. 친구가 가져온다면 아끼는 책에 고이 끼워둘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것. 그런 것을 넣고 싶다.
별의 별것을 다 집어넣고 싶다는 뜻이다. 물성이 없는 것 또한 물성이 있게끔 만들어 넣고 싶다. 사랑하는 마음, 행복한 마음,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것에서 오는 기특함까지 인벤토리에 모두 저장하고 싶다. 나를 기쁘게 만들었던 것들, 가량 오늘 먹었던 '바나나 초코 밀크', 비 온 뒤의 냄새, 이런 것까지도 전부. 그렇게 인벤토리에 저장해두었다가 내가 필요할 때 체력을 채우거나 감정을 북돋을 요량으로 사용하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깨우고 일어서게 만들고, 자리를 박차게 만들고 다시 한번 무언가를 해볼 수 있도록 벅차게 할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마음의 인벤토리 제한은 없으니까. 이런 인벤토리와 함께라면 마음이 묵직해도 괜찮을 것이다. 정말 어디든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