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by 김단한

나는 1인칭 게임에서,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생존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 나는, 함께 살아남은 아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펼쳐야 했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본의 아니게 식인종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고, 식인종이 잡아간 내 아들을 찾기 위해서 나는 동굴을 뒤지고, 식인종과 대적하고, 내가 죽어 끌려가는 일이 없도록 체력을 잘 체크해야 했다. 그랬는데…….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집부터 짓는다. 최대한 식인종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도 바다가 보이며, 모래사장이 푹신하게 깔린 안락한 곳에 나는 집을 짓는다. 통나무를 썰어가며 그 와중에도 식인종이 나에게 침범하지 못하게 울타리까지 둘러놓는 근성을 보인다. "집 지으려고 이 게임 하나. 이럴 근성으로 아들 벌써 찾았겠다." 게임하는 나를 지켜보던 동생이 툭 던진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받아친다. "레벨업은 관심 없다, 집이다 지으련다."


실제로 나는, 1인칭 게임을 하면 미션이나 일일 퀘스트엔 크게 관심이 없고 잘 만든 그래픽을 감탄하며 그곳을 돌아다니는 일을 줄곧 즐겨왔다.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거나, 다음 미션으로의 재촉이 있는 게임이라면 쉽게 손 놓곤 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게임은 재촉 따윈 없었다. 바닷가 근처에 벤치 하나를 뚝딱뚝딱 만들어놓고 거기에 앉아 멍하게 굽이치는 파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가끔 모닥불을 만들어 불도 피워주고, 마우스를 올리기만 하면 쏟아지는 별(그래픽)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식인종과의 대적이 가끔은 두려웠지만, 어느 외로운 밤에는 어두워질 때마다 섬 전체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괴성이 익숙하고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렇다. 홈 스위트 홈. 즐거운 우리 집. 나는 '집'이란 존재가 주는 평화로운 안락함에 푹 빠져있다. 게임 속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늘 보는 배경이지만, 책상 한가득 쌓인 책과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강아지, 구겨진 이불, 갓 말린 빨래에서 오는 바삭한 냄새 등이 풍기는 내 방이, 내 집이 너무나 좋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이곳은 나에게 있어 그저 천국이다. 밖의 날씨가 험악할 때도, 너무 좋아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날씨여도, 나는 무작정 집에만 틀어박혀 하루를 보내곤 했다. 무선이 아니라 유선인 삶.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충전선이 꼬리뼈부터 쭉 이어져 집 곳곳에 박혀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집에선 그렇게 충전이 되고, 나가선 방전이 되어 들어온다.


예전에는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것으로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곤 했다. 만나는 친구들과 꺅꺅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별 계획 없이 만나 결국 맥주 한 잔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기억에 남지 않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한없이 오가더라도 그 순간엔 즐거웠다. 어느 날부터 나는, 그러니까 약속이 갑자기 취소된 어느 날에 안도감을 느끼고 이불에 파묻혔을 때부터 나는 '안락함'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쉬게 해주는 어떤 것, 내가 안전하다는 만족감 등이 포함된 복잡 다난한 마음이었다.


요즘은 간간히 가방을 메고 밖을 나선다. '안락함'에 너무 파묻혀 있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와 바깥공기를 마시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글을 쓰면 의외로 잘 된다. 꾸벅꾸벅 졸게 만드는 집의 '편안함'이 잠시 배제되어서일까. 이것만 다하고,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서 다시 파묻힐 생각을 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고인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세대를 강타하고 난 후부터 집 밖을 온전치 않게 생각하거나, 집 밖을 나서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 역시도 밖을 나서는 걸 줄이다 보니 집이 편해졌고, 안으로 눈을 돌려보니 '이렇게 재미있었단 말이야!' 하며 발견한 나만의 놀이들도 많아서 이젠 집안에서 노는 것이 더 재미있어진 케이스다. 지치고 돌아왔을 때 쉴 수 있고, 흐트러진 마음의 방도 좀 정리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잔뜩 쟁여놓을 수 있는, 나를 달랠 공간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것이 나에겐, 우리에겐 '집'이다.


비록, 게임에서처럼 앞엔 숲이, 뒤로는 바다가 보이는 구조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아들을 빨리 구해야겠지만……, '기본 캐릭터'인 나는 아직 아들을 구할 어떠한 키포인트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멍부터 때려본다. 기다려, 곧 구해줄게. 근데 일단 나부터 살아야 너를 구하거나 할 것 아니니, 아들아. 좀만 더 버텨보자, 우리. 울타리 조금만 더 보강하고 구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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