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한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이 글부터 읽으시는 분들도 있으실 테니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 나는 일명 '바리바리 스타'라고 불릴 만큼 여러 가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다. 더운 여름날, 어깨에 땀띠가 나는 한이 있어도 백팩에 이것저것 필요한 것과 '필요할 것 같은' 것을 넣어 다닌다. 어쨌든 모든 것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 정작 필요한 순간에 내가 그걸 이용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 싸들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점도 있고, 분명히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일단 마음이 푸근해진다. 뭔가 찾을 때 바로바로 필요한 것을 꺼내 취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단점은 힘들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이 고리를 못 벗어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게임에서도 '바리바리 스타' 근성은 어딜 가지 않아 아이템이라면 무조건 줍고, 체력이 다 차있는데도 어찌 되었건 뭐라도 하나 더 줍기 위해 체력을 채워주는 물병을 몇 개씩 들이키고 다시 담거나 눈물을 머금고 그나마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거의 필요 없다) 아이템을 버리곤 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정말 다양한 아이템들이 쏟아지는데, 나의 인벤토리 함은 너무 작아 무조건 무언가를 들이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동시에 이루어지니 그럼 도합 0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 고심을 하고 난 뒤에 인벤토리 창에 넣게 되는 건 가치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 플러스인 쪽으로 고심하는 수밖에. 나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여러 아이템을 줍고 조합하며 인벤토리 창 정리에만 몇십 분을 보냈다.
근데, 이것이 현실세계의 '기본 캐릭터'인 나에게도 일어나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현실 세계의 '기본 캐릭터'인 나는 무언가를 잘 버리지 못했다. 마냥 다 끌어안고 뭐든 놓치지 않으려 욕심을 부렸더랬다. 이것도 '언젠가' 쓸 것 같고, 저것도 '언젠가' 쓸 것 같으니까 계속 두고 보자는 식으로 빵빵하게 모아댔다. 모으는 것은 주로 감정이었는데,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죄다 마음에 쓸어 담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절한 처방이 필요했다.
현실의 '감정'은 게임의 아이템처럼 똑같은 것이 없어 겹쳐 보관할 수 없다. 그러니까 외로움도 각자 다른 외로움이 있고 기쁨도 천차만별이라 그때그때 잘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이걸 수용하는 마음이라는 큰 틀은 어쩔 땐 좁아졌다가 또 어쩔 땐 마구잡이로 넓어짐으로 유의해야 했다. 넓어졌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되려 그 틈을 타 엉뚱한 감정이 몰려왔기 때문에 배로 주의해야 했다.
내가 택한 방법은, 감정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로봇 부품을 뜯어보듯 감정을 뜯어 하나하나 찬찬히 보는 것이다. 훗날에도 나에게 힘을 주거나 도움이 될 것 같은 감정이라면 그대로 보관하고, 그렇지 않으며 나를 갉아먹는 것들이라면 과감하게 버리는 식이다. 아주 쉬운 이야기를 굳이 쓰는 이유는 아주 쉽지만 그만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음의 인벤토리를 잘 관리하는 것은 그때그때 내가 필요한 체력을 쌓을 수 있는 힘을 준다. 그 힘은 내가 하루를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이끈다. 이끄는 힘을 장착하기 위해서라도, 그 동력이 최대한 오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아주 선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