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이(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사무직 포함.)들은 말한다. 'Save'의 중요성을 망각하지 말라고. 나는 몇 번이고 오랫동안 쓴 글을 날려버린 적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ctrl'+'s'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고 글을 쓰곤 한다.(심지어 버릇처럼 5-6번 누른다.)
처음 썼던 결과물이 완전 별로일지언정, 처음 받은 영감에서 나온 글 스타일은 절대 무시할 수 없기에 '처음'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처음을 온전히 껴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저장'이겠다. 다 날려놓고 다시 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처음에 느꼈던 그 기분을 오롯이 느끼지 못할 것이다.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게임에 몰두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잘되는 날이 꼭 있다. 나는 지극히 '기본 캐릭터'라서 일단 집 밖으로 나가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너무 오래 집에 있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가야 해서 나갔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는 모험이 된 것이다. 1시간 동안 숲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별별 아이템을 다 줍고, 새로운 동굴도 발견했다. 그러다 식인종에게 붙잡여 죽었는데, 그러니까, 다시 부활할 거란(식인종에게 잡혀도 처음 한 번은 봐준다, 두 번째엔 완벽히 죽어 저장의 순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채 'save'를 하지 않은 한 시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엔 '현실 부정'의 단계가 시작된다. 에이, 아니겠지, 어디에 저장이 되어 있겠지, 다시 껐다가 켜면 복구 메시지가 뜨겠지… 는 개뿔. 나는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었음을 절감한다. 다음은 분노의 단계다. 아니, 왜 그 쉬운 저장버튼 하나 못 눌러서! 삐리리. 삐리리……. 다음은 체념 단계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전부 다 내 탓이옵니다. 다음은 혼이 나가서 작업을 이어가거나 하지 않거나 인데, 나는 대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앉아 일을 이어가는 편이다.
물론, 모든 것이 처음만 못하다는 것을 인식한 채로 시작해야 한다. 처음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쓸모 있는 아이템을 찾은 놀라움과 신기함과 기쁨은 온데간데없다. 심지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나는 마구 뜀박질을 해가며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탐험보다는 그냥 해치우는 느낌이랄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미션이 아니라 밀린 숙제를 해나가는 기분으로 한 시간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감성이 돋아날 리가 있나. 그러므로 'save'는 매우 중요하다. 정말이다.
현실세계에서도 나는 'save'를 매우 중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러니까 게임에서의 저장과 일의 저장 말고, 일상의 저장 말이다. 현실에서도 자주 무언가를 수집하고 저장하며 시간을 보낸다. 왜 그런 말도 한때 유행했지 않나. '내 마음속에 저-장!' 정말 저장은 중요하다. 어떤 감정, 순간, 사람과 같은 모든 것이 내 안에 저장되고, 서랍 속 초콜릿을 꺼내먹듯 추억을 하나씩 톺아보는 건 나의 정신건강에 아주 좋은 행위다. 이건 모두 내가 스스로 "저장"을 잘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일일 테다. 그러므로, 다짐해본다. 앞으로도 잊지 말고, 저장하기로. 훗날 충분한 양분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