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소거 방식
마음이 무거울 땐 고개를 숙이고 걷게 된다. 하늘이 어떤지,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구름은 어떤 모양인지, 감탄할 새 없이 그저 대충 마음이 있을 것 같은 자리를 더듬으며 걷게 된다. 이럴 땐,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닿아야 할 곳이 없기 때문에 급할 것도 없다. 처음 걸음을 걷던 그 속도 그대로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마냥 걸을 뿐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면서 걷다 보면 온갖 것들이 발에 차이곤 한다. 불안감, 열등감, 낮아진 자존감, 분노, 막막함, 슬픔…… 뭐 그런 것들이 나뒹굴며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나는 걸을 때마다 내 몸이 무거워짐을 시시각각 느낀다. 하지만, 계속 걷는다. 이럴 땐 걷는 거 말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뭐라도 하기 위해서 걷는 행위는 쉽게 지친다. 힘차게 걸어도 언젠가는 지치게 마련이지만, 여러 감정에 발을 질질 끌며 걸을 땐 지치는 순간이 조금 더 빨리 다가온다. 나는 조금 더 걷기 위해서, 우습게도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표지판 삼아 걷는다. 저기 보이는, 누군가가 마시고 버린 아메리카노 플라스틱 컵까지만 걷자, 저기 누가 버린 검은 봉지까지만 걷자, 저기 있는 폐지까지만 걷자. 그렇게 걷다 보면, 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대게 발걸음을 박자 삼아 뿅뿅 튀어 오르게 마련인데, 내 기준에서 봤을 땐 절반은 쓸데가 있고, 절반은 쓸데가 없는 생각뿐이다. 쓸모가 있는 생각도 그나마 잠시 멈춰 메모를 해놓지 않으면 훌쩍 선을 넘어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만다.
마지막 지표로 삼은 빨대가 꽂힌 플라스틱 컵이 얼음을 잔뜩 품은 채 화단에 서 있었다. 컵 안에 들어있는 물은, 본래 담겼던 음료가 아니라 얼음이 녹아서 생긴 것이었는데, 그래도 애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주황빛을 띠는 컵의 밑바닥을 보아하니 홍차가 아니었을까. 홍차를 생각함과 동시에 홍차를 좋아했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나와 상관이 없는, 한때의 사람.
나는 그 컵을 하나하나 분해해 근처 분리수거통에 넣었다. 컵홀더는 종이를 모으는 통으로, 플라스틱 컵은 플라스틱을 모으는 통으로, 안에 들어있던 얼음과 물은 화단에. 곧 빈손이 되었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홍차를 좋아하던 누군가가 떠오른 이 구질구질한 ‘마음’은 대체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음은 어떻게 버리나. 이런 쓸데없는 감정을 넣어버리는 봉투는 없을까. 마음은 어떻게 분리수거를 하지. 마음도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버리지 못한 ‘마음’이 수두룩하다. 제때 버리지 못한 그것들은 마음에 몇 개의 산과 섬을 만들었다. 덕분에 가끔, 마음에선 쿰쿰한 냄새가 났고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리곤 했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발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으므로, 나는 줄곧 걸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따라 걸었다. 쓰레기는 길목마다 있었고, 다행히 나는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생각하는 것들이, 갑자기 떠올라 걸음과 숨을 멈추게 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완전히 멈추게 하지 못하도록, 나는 무언가를 쓰는 행위로써 조금씩 그것을 배출하기로 했다. 각자에겐 각자만의 소거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쓰는 것. 아직 쓰는 것 이외에 마음 비우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꾹꾹 눌러 담은 쓰레기봉투가 보였다. 순간, 걸음을 멈췄다. 마음이 터지지 않도록, 그때그때 잘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바로 적었으므로, 쓸데없는 것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