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없는 작별 인사

30년을 함께한 금성 냉장고

by 김단한

나는 물건을 버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사실, 물건을 버리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행위를 약간 버거워한다. 물건뿐만 아니라, 거기에 묻은 어떤 추억도 함께 버린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것 같다. 추억을 안고 있는 물건은 물건이 원래 가진 무게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추억은 바래지도 않고 그저 쨍하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는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 세상에 쉬운 작별은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곧 버려야 할 물건에게 시간을 들여 작별 인사를 고하는 버릇이 있었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이 버릇을 가지고 있다.


버릴 물건과 작별하는 순서는 대강 이렇다. 작은 물건이라면 손에 얹고, 큰 물건이라면 품에 안는다. 그리곤, 대충 그 물건의 귀가 있을 법한 자리에 대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고마웠어, 덕분에 잘 살았어. 잘 가. 앞에 읊는 말은 이렇듯 똑같고, 뒤에 읊는 말은 물건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어폰에겐 '그간 좋은 음악을 내 귀에 전달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건전지에겐, '어떤 물건을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다리가 부러져서 더는 쓰지 못하게 된 안경에겐 '그동안 내 시야를 트이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덧붙인다.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나길!' 무엇으로 태어날지, 재활용이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영원히 소멸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


작별을 들은 물건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해야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 든다. 물건과 나의 관계는 여기까지, 이런 느낌이랄까. 맞다. 나 편하려고 하는 짓이다. 작별에는 확실한 마침표가 있어야 하니까. 헤어지잔 말없이 흐지부지 끝내는 연애 같은 것은 이젠 지겹다.


수명이 다 된 물건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꼬리꼬리 하다. 이 물건을 처음 가졌던 순간부터 보내는 순간까지가 머릿속에, 아주 짧은 단편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물건을 처음 가진 순간과 왜 가지게 되었는지, 내가 이걸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정확히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작별 전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물건을 바라보면서, 그 물건을 보내주는 시간은 나에게 중요하다.


사실, 정확하게 기억하면 할수록 물건을 배웅하는 시간은 자꾸만 길어진다. 추억이 짙게 묻은 물건일수록 더 그렇다. 나의 좁은 방안엔 그래서 아직까지도 꿋꿋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옛 물건들이 많다. 배웅하기가 아쉬워서 자꾸 헤어짐의 순간을 미루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물건들은 언제까지고 버릴 수 없을 것만 같다가도, 또 희한하게 어느 순간 미련 없이 버리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나와 작별한 물건은 '금성이'다. 냉장고의 이름을 '금성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냉장고 앞면에 'Gold Star'라고 쓰여있길래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불렀던 것인데, 알고 보니 이 냉장고는 진작에 '금성이'로 불렸단다. 나만이 부르는 애칭인 줄 알았건만. 어쨌든, 금성이는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금성이는 내가 다섯 살 때 나와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러니 거의 나와 27년을 같이 지낸 셈이다. 몇 번이나 이사를 가는 동안에도 금성이는 묵묵히 우리를 따라왔고,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하며 우리 가족이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왔다.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내용물을 넣을 수 있는 품도 상당했는데, 엄마는 금성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때 당시에 김치칸, 그러니까 야채를 넣을 수 있는 칸이 따로 있는 냉장고는 골드스타가 처음이었어. 그러니,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이 당연했지."


금성이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말을 듣지 않는 적도 없었고, 멋대로 군 적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끝까지 맡은 일을 다 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이제 정말로 수명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은 금성이와의 작별을 준비했다. 그 시간이 참 묘했다. 30년 가까이 우리와 함께 했던 냉장고를 보내는 것이 이리도 섭섭할 줄이야.


거실 한편을 든든하게 차지하며, 자신의 옆에 무언가를 덕지덕지 붙이고 놀아도 군말 없이 있어주었던 금성이. 금성이를 보내는 일은 생각 외로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금성이가 있었던 자리에 새로 놓이게 될, '대우'가 오기로 한 날. 엄마는 금성이가 야무지게 품어주고 있었던 식료품을 하나하나 꺼냈다. 우리와 함께 한 이래 한 번도 속을 비워놓은 적이 없었을 금성이. 텅텅 빈 금성이의 속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엄마, 섭섭하지 않아?"

"전혀. 이제 얘도 좀 쉬어야지. 여태 쉬지 않고 돌아갔으면 됐지. 고맙다. 잘 가라!"


엄마는 금성이에게 아주 짧고 굵게, 그리고 쿨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물건을 보낼 때 인사를 건네는 나의 행동은 엄마에게서 온 것일지도 몰랐다.


'대우'가 자리하고, 금성이는 떠났다. 나는 그즈음, 마음에 쌓이는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정처 없이 걷곤 했다. 금성이를 보낸 그날도, 툭툭 튀어 오르는 마음의 무언가를 발로 꾹꾹 눌러가며 걷고 있었다. 그때, 관리소 앞 인도에 가만히 서서 자신을 실어갈 트럭을 기다리는 금성이와 눈이 마주쳤다. 떠난 줄 알았는데. 괜히 반가웠다. 금성이 뒤에는 마찬가지로 어느 집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 한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는 금성이와 동년배로 보였다. 나는 잠시 서서, 둘이 속삭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봤다. '얼마나 살았소?', '난 한 30년 가까이 저기 서 있는 저 여자애 집에서 살았다오.' 이런 대화들.


마지막으로 금성이를 눈에 담았다. 그때, 오른쪽에 쓰인 일본어가 눈에 띄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낙서였다. 의아한 마음에 집에 들어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금성이 옆에 일본어가 쓰여있더라, 뭐지. 엄마는 내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엄마가 한창 일본어 배울 때 썼던 거야. 부엌에서 밥하다가, 까먹기 싫으니까 급한 마음에 거기 적어놓고, 그러면서 외웠던 거. 근데 이사 오면서, 글씨 써놨던 쪽이 벽에 가려지게 돼서……. 까먹고 있었네, 그게 적혀있은 줄."


물건은 우리와 함께 산다. 기억할만한 무엇을 만들어준다. 그러면서 떠날 때, 자신의 몫을 안고 간다. 그것이 슬픈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쨌든 자신의 몫을 작게나마 짊어지고 떠난다. 우리를 떠난 물건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은 어떤 모험을 하고 있을까. 내가 새로 만난 물건들 중에, 나를 예전에 만났던 물건이 있을까. 그럼, 영원한 작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침표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눈 물건과 나는 언젠가, 어디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도 있겠지. 반가운 재회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결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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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금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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