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처럼 붕 뜬 채로 산 적이 있었다

오리털 잠바 솜털&비둘기 깃털

by 김단한

이제는 길거리에 나뒹구는 깃털을 보아도 놀라지 않지만, 예전엔 걸음을 멈추고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놀라곤 했다. 그리 놀라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부러 더 오버하며 놀랐던 이유는 대단치 않다. 그저, 나의 마음 상태에서 불거진 어떠한 상상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잠시 동안 아주 다른 세계로 나를 던져버리는 상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의 모습을 가졌는데, 실제로도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아니면 너무 뭔가에 몰두해 잠시 동안 머리를 쉬어주어야 할 때마다 쉽게 여러 상상에 몸을 맡기곤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상상을 하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었다. '내가 지금 가만히 앉아있는, 혹은 서 있는 이 상태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난다면?'의 공식만 생각한다면 다른 세계로 빠지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길바닥에 나뒹구는 깃털을 볼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 깃털이 행여나 어느 누군가의 날개뼈에서 흘러나왔을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것이다. 옷 안으로 단단히 숨긴, 등 뒤로 감춘 날개를 상상하면 괜히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날개를 이용해 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두 다리로 엉성하게 걷다 아무도 모르게 흘린 깃털 하나,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선 나, 그런 나를 멀리서 보며 당황스러워하는 깃털의 주인. 이렇게 장면을 나눠 상상하면, 정말 어느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몸을 숨긴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아 황급히 뒤돌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상상이 터무니없는 것인 줄을 알면서도 계속 상상을 해나갔다. 앞서 말했듯, 상상을 하는 행위는 일종의 현실 도피 형태를 띠고 있고, 그렇다는 것은 현실을 떠나고 싶은, 어쩌면 잠시 모른 척하고 싶은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니 상상을 시시때때로 하는 행위를 그리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즈음의 나는 계속해서 상상을 했어야 했다. 거의 의무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안되었던 나날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난 내 눈앞에 바닥을 구르는 보송한 흰 깃털이 보였던 것은, 그런 날들 중 어느 하루였다. 희고 고운 깃털은 단단한 뼈대를 중심에 두고 양옆으로 털을 나부끼고 있었다. 끝이 살짝 말린 모습은 꼭 어린아이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에서 덜 깬 비몽사몽 한 상태로 그것에 손을 뻗었고, 그것은 날아가지 않고 고요히 나의 손에 붙잡혀주었다. 한가한 일요일의 늦은 오후였다. 넓은 창밖으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음이 가득했고, 더 자도 된다고 속삭이는 듯한 볕이 가만가만 창틀에 닿았다. 네모난 창을 통과한 바람이 손에 있던 깃털을 흔들었다.


한동안, 잠을 편히 자지 못했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번 해가 뜰 때 자고, 해가 애매하게 떠 있을 때 깨는 것을 반복했다. 자꾸만 나를 흔드는 무언가가 마음에 깊이 들어있던 탓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미웠다. 저 사람은 행복하겠지. 또 어떤 날은 그랬다. 저 사람도 내가 겪은 것을 다 겪어 봤을까. 또 어떤 날은 그랬다. 가여운 사람, 앞으로 살면서 힘든 일이 많을 텐데 뭐가 그리 좋다고 웃고 있을까. 내 마음이 마음 같지 않았다. 내가 내 마음의 눈치를 보는 날들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고, 원하는 것이 있는지 조차 불분명한 날들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깃털처럼 살았던 것 같다.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하고, 후, 불면 부는 방향대로 거침없이 나아가버리는. 생각은 아무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고 충동적으로 뻗었고, 어디 한 곳에 가만히 정착하지 않은 채 마구 날리기만 했다. 중심이 없었고, 가볍기만 했다. 지면에 발이 닿지 않는 붕 뜬 마음이 한동안 계속되었을 때는 잠들기만 하면 끊임없는 내리막길을 넘어질 듯 말 듯 질주하거나 구멍이 숭숭 뚫린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꿈만 꾸었다. 그렇게 자다가 지쳐 눈을 뜬 내 앞에 그 깃털이 있었던 것이다.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종일 잠만 자는 딸이 걱정되었던 것인지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깃털을 흔들며 말했다. 엄마, 내 방에 천사가 왔었나 봐. 근데, 내가 계속 잠만 자서, 자기 못 알아주는 게 서운해서 그냥 간 것 같아.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러니?’ 아주 담백하게 답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엄마가 나더러 미쳤다고 하지 않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냐고 묻고 말아서, 참 고마웠다. 고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덕분에 나는 창가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는 천사를 계속 그려볼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편한 잠을 잘 수 있게 자신의 날개를 이용해 가만가만 부채질을 해주는 모습을. 뜨겁게 데워진 마음을 가만가만 식혀주는 모습을. 내 손에 있는 깃털은 그러다가 빠진 것이 아닐까.


한동안 투명한 휴대폰 케이스 안에 부적처럼 깃털을 넣고 다녔다. 나는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깃털을 들여다봤는데, 보고 있으려면 우습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것이 알게 모르게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급기야 ‘나의 지쳐 잠든 모습을 바라봐주며 가만가만 날갯짓을 해주었던 고마운 어떤 천사’가 나의 뒤를 밟는 장면까지 상상하기에 이른다. 나의 뒤를 지켜주는 날개를 가진 천사라니,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러니까 가끔은, 그런 상상에 기대어 살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상상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때가 있다. 현실은 너무 현실적이기만 해서, 그때는 정말이지, 그렇게라도 해야, 그러니까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어떤 것에 기대야만 겨우,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다.


가끔은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를 만들어 품고 지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은 꽤 재미난 일이다. 아무에게도 발설되지 않을 비밀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꽤 책임감 있는 어른의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런 비밀을 홀로 품고 있을 동안에 나는, 커다란 날개를 등에 얹은 채 발이 땅에 닿아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정처 없이 걷는 꿈을 꾸곤 했다. 가벼운 그 깃털 하나가 마음을 가라앉힌 것이다. 당시에 나는 그런 포근함이 필요했던 것 같다. 딱 깃털 하나만큼의 따스함이.


나는 세탁소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비닐을 뒤집어쓰고 있는 오리털 잠바(소매가 터져 하얀 털이 비죽 나온)가 방문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꽤 오래 천사의 날개라 생각하며 지냈다. 가끔은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이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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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부주의한 누군가가 흘리고 갔을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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