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종이컵
맛있는 음식을 아껴뒀다가 가장 나중에 먹는 버릇은 고등학교 때 생겼다. 당시, 나는 야자(야간 자율학습, 자율이라고 하지만 자율이 아니었던)를 충실히 이행하(려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 야간 자율학습은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하루의 마지막 학교 종이 울리면 친구들과 가방을 챙기며, ‘안녕, 잘 가!’가 아니라, ‘이따 봐!’를 외치며 교실 문을 나서곤 했다. 우르르 몰려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 씻고, 누워서 잠시 자고 일어나면 다시 등교를 해야 했으니, 이따 봐, 보다 더 적절한 인사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집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학교에서 5분 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 집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타는 것, 또 하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4-50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가는 것.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어느 쪽으로 보나 쉽고 간단한 방법이었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열심히 걸음을 재촉해도, 나보다 더 발이 빠른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몸을 부대끼며 끼어들어 열심히 문을 비집고 들어가 버스에 어떻게든 나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대담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아이였기에, 매번 아이들에게 밀리고 밀려 버스를 몇 대나 놓치곤 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걸어갔으면 벌써 집에 도착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애초부터 정류장과 반대편으로 걸어 집으로 가는 것이 나에게 더 편한 일이었다.
나는 밤길을 혼자 걸었지만, 허하지 않았다. 내손엔 항상 뜨끈한 떡볶이가 담긴 종이컵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떡볶이를 먹으면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 파김치가 되어도 좋았다. 배가 든든하고, 걸어온 탓에 피곤하기까지 하니 잠에 빠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즈음에는 잠이 너무 많아 탈이었다. 아마 그때 너무 많이 자서, 지금은 잠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선 손에 든 음식을 먹으면서 걸어가는 것이 어렵게 되었지만, 당시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교하는 학생들 손엔 늘 종이컵이 들려있곤 했다. 종이컵에 담긴 무언가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는,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학생들에게 아주 유용한 끼니가 되어주었다. 사실, 맛이 그렇게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뭘 먹어도 자꾸만 허한 느낌이 들고, 계속해서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대체로 모든 것들이 맛있는 편에 속했다.
다니던 학교 바로 옆 건물엔 한 아주머니께서 홀로 운영하시는 분식집이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학교에서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최고로 장사가 잘 되었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곳은 간판도 없고,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없다. 그저, 계산을 하고 난 후 종이컵을 받아가면 되는 간단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알아서 척척척, 그 시스템을 잘 따랐다. 기다란 종이컵에 가득 채워지는 떡볶이는 단돈 오백 원. 거기다가 삼백 원을 추가하면 먹고 싶은 튀김을 종이컵 가장 밑바닥에 깔아낼 수 있었다.
튀김의 종류는 가지각색이다. 고추튀김, 오징어 튀김, 피자만두, 잡채말이, 김밥 튀김, 어묵 튀김 등등.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새빨간 손잡이가 빛나는 가위로 튀김을 들어 긴 종이컵 안에서 착착 자른 후, 그 위로 수북이 떡볶이를 부어준다. 그러니 마지막에 먹는 튀김엔 떡볶이의 양념이 적절하게, 아주 진득하게 배어 있어 상당히 맛있을 수밖에 없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역시 그 길목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되는 떡볶이집인 것엔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분식집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나의 눈에 아주머니는 종종 커다란 그림 액자 안에 갇힌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머니는 매번 똑같은 옷차림과 자세로 서 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엔 진한 주황색의 국자를 든 채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이리저리 휘젓고 있는 모습으로. 앞에 다가서면 아주머니는 땀이 맺힌 얼굴로 ‘뭐?’라고 외치신다. 자주 방문하다 보면, 이 말은 곧 ‘어서 와, 배고프지? 빨리 주문해, 어떤 튀김을 넣어줄까?’란 말과 뜻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창밖에 선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그러니까 기다리다 못한 아주머니가 나보다 뒤에 온 아이들의 주문을 먼저 받기 전에 그냥 떡볶이만 먹을게요, 하던지 먹고 싶은 튀김 이름을 크게 외치는 것으로 얼른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교문을 나서기 전, 떡볶이만 먹을 것인지, 떡볶이와 튀김을 동시에 먹을 것인지, 그럴 것이라면 튀김은 어떤 것을 먹겠는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의 확률이 높다. 당시에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보다 더 고민스러운 것은 없었으므로, 이것저것 튀김을 되짚어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채, 이미 아주머니가 그려진 커다란 액자 앞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아이의 앞에서 주황색 국자로 떡볶이를 휘휘 젓는다. 다른 한 손은 가위를 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떡볶이를 휘젓는 아주머니의 국자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나의 친구들 중 대부분은 그런 국자의 속도에 당황해 없는 튀김 이름을 뱉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주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린다. 그런 튀김은 없어, 다음! 그러면 이때, 내가 등장할 타이밍이 온다.
나는 적절한 순간에 말을 뱉어 친구들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했다.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었다. 나는 매번 먹는 튀김이 정해져 있었다. 그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 먹은 이래, 다른 튀김을 먹은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른 튀김이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도전 정신을 발휘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먹어본 것만 먹는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완벽한 편식의 여왕 자질을 갖춘 셈이다.
피자만두요.
내가 외치는 ‘피자만두요’는 주변의 속도를 한 박자 늦춰주는 주문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아주머니는 나의 주문을 듣고 나면, 비로소 액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였다. 아주머니의 행동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러니까 '피' 소리를 듣자마자 가위로 피자만두를 집어 올려 종이컵 안에서 착 자른다. 위로 떡볶이를 붓는 것까지는 겨우 3초에서 5초가 걸릴 것이다. 이때, 친구들은 자신이 먹을 튀김을 생각한다. 이렇듯 모두가 손에 종이컵을 든 채 길목을 걷는 행복을 누리기까지의 작은 사투는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곤 했다.
솔직히, 양념을 잔뜩 머금은 튀김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튀김은 떡볶이의 떡과 어묵에 눌려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떡볶이와 어묵을 모두 먹고 난 후 튀김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다. 억지로 저 안에 있는 튀김을 꺼내려고 하다간, 길바닥이나 교복에 떡볶이를 쏟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욕심은 금물. 떡볶이와 어묵을 제대로 즐긴 자만이 튀김이 장식해주는 마지막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근처의 분식집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나는 기다란 종이컵을 볼 때마다 넘치게 담겼던 떡볶이를 생각하곤 한다. 그것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집까지 혼자 걸었던 순간이나,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떡볶이 하나에 비밀이나 고민 하나씩을 풀어놓았던 순간도.
그때 했던 고민들은 다 해결이 되었었나.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소리 없이 깔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민과 걱정, 불안에 깔리고 깔려 단단한 마음의 땅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자주 무너지지만,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는 마음을 보면 밑바닥에 깔린 무언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다.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는, 가장 밑바닥에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