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그 시절 '장미' 담배를 피웠지요

담배꽁초와 라이터

by 김단한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줄곧 언니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속상한 일을 겪고 들어와 엉엉 우는 나를 낄낄거리며 놀리면서도 함께 그 일에 관해 머리를 맞대 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자잘한 일에 발이 걸려 엎어진 나를 말없이 일으켜줄, 식성이 같아 매일 함께 야식을 시켜먹으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어줄, 부른 배를 두드리며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턱끝까지 이불을 덮은 채 발을 꼼지락거리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담소를 나눌, 가족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영영 쪼개지지 않을 것 같던 슬픔을 반으로 쪼개서 나눠가질, 내가 엉뚱한 길을 걸으면 그 길로 걷지 말라고 알려줄, 가끔 나에게 기대 울며 나도 언니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 줄, 언니. 그런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엄마, 나도 언니 낳아줘.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정말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도 언니 낳아줘. 엄마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언니 말고 동생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진짜로, 언니 말고 남동생이 생겼다(!).


나는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언니, 라는 발음은 어린 나를 아련하게 만들었다. 아는 단어도 별로 없던 어린 내가 아련함이라는 게 뭔지나 알고 아련함을 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린 나는, 언니가 없는 나는……아련했다. 원래 있었던 '언니'가 잠시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나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는 '언니'를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런 꼬리꼬리한 느낌이 밤마다 나를 찾아왔다. 덕분에, 언니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마음은 더욱 들끓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는 언니가 생겼다. 그러니까 정말로, 저 언니가 내 언니였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든 언니가 나타난 것이다. 머리를 위로 질끈 올려 묶은, 말총머리 스타일을 한 언니는 유난히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그 언니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예뻤다.


나는 그 언니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 언니도 나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 얼굴만 알았다. 정말, 정말 얼굴만 알았다. 그러니까 인사하기도 애매하고, 눈인사 하기에는 더 애매한 그런 사이.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문구점, 같은 코너에서 자주 마주치며 얼굴을 익혔다. 그 코너는 장난감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우리는 수많은 장난감들 중에서도 유독 칼이 많은 코너 앞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다.


지금은 소리도 찬란하고, 금방이라도 광선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다양한 종류들의 장난감 칼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플라스틱 칼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색깔이 빨강 아니면 파랑 이런 식으로 선택의 폭이 좁았다. 맞다, 그 예능 프로그램에 가끔 나오는, 복불복할 때 쓰는 칼, 그거 맞다. 힘차게 뽑았을 때 칼이냐, 아니면 축 늘어진 파냐, 정할 때 나오는 그 칼. 그 칼이 나의 어린 시절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나는 우리 동네 문구점에서 늘 새로운 칼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아이였다.


문구점의 이름은 삼미문구였다. 삼미문구는 학교 근처에 있지 않고, 동네 시장과 가까운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작고, 잡다한 물건들이 많았던 그곳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매일 어두웠다. 삼미문구는 출입구가 두 군데였는데, 어느 쪽을 열고 들어가도 너무 많은 물건으로 인해 주인아주머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튼, 어떤 날, 어떤 시에 그 언니와 나는 각각의 출입문으로 그곳에 들어섰다. 언니는 자신의 동생에게 줄 장난감 칼을 사기 위해, 나는 나의 끌어 오르는 히어로 본능을 잠재워줄 장난감 칼을 사기 위해.


나는 나 말고 장난감 칼을 사는 여자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에, 같이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굉장히 가슴이 설렜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니가 나에게 '너는 뭐 살 거야?' 물어본 후 나와 똑같은 장난감 칼을 사는 것도 너무 좋았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문구점에서 마주쳤고, 어떤 날은 칼을 사고, 어떤 날은 칼을 사지 않은 채 털레털레 나왔다. 우리는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인사나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언니는 어느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교복을 입고 있는 언니 자체가 멋져 보였을 뿐, 그 교복이 어느 학교 교복인지, 그래서 언니가 몇 살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겠거니 생각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네, 당연히 많겠지, 그러면 더 좋다! 언니가 내 언니가 되어줄 수도 있잖아! 전에 장난감 칼을 사는 건 남동생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신기한 듯 이래저래 보던 언니 눈빛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해! 그 남동생보다 더 괜찮은 동생이 되어줄 수도 있어! 진짜야! 언니가 나의 언니가 되어준다면 나의 모든 장난감 칼을 다 보여줄 수 있어!


그 설렘이 언제 깨졌더라.


언젠가 집으로 가는데, 언니와 영 다른 곳에서 마주쳤다. 문구점과 굉장히 떨어진, 아파트 뒷길이었다. 내가 왜 그곳으로 걸어갔냐 하면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그렇다고 할 수 있겠고, 언니가 왜 거기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언니는 나를 불렀다. 나는 순순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언니는 몇 번이고 꼬깃꼬깃 접은 오천 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곤, 말했다.


너 나 알지.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저기 슈퍼에 가서, 장미 담배 좀 사다 줘. 남은 건 과자 사 먹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오천 원을 받아 들었다. 그리곤 슈퍼로 향했다. 뒤에서 언니가 나를 줄곧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한 번도 뒤돌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그 언니가 우리 아파트가 아니라 다른 아파트 쪽에 있었다면, 그래서 내가 한 번도 가지 못한 슈퍼를 갔다면 언니에게 장미 담배를 그냥 사다 주었을까. 음,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나는 언니에게 담배를 사다 주지 않았다. 슈퍼까지 의기양양하게 들어갔다가, 과자 코너까지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슈퍼 아저씨가 나에게 인사를 했기 때문도 아니고, 거기가 나의 단골 슈퍼라서도 아니었다. 나는 주먹을 꼭 쥔 채 슈퍼를 나섰다. 손에는 여전히 꼬깃꼬깃한 오천 원이 숨죽이고 있었다. 언니는 다시 돌아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담배는 나빠요. 언니가 담배를 안 피웠으면 좋겠어요. 나는 우리 아빠한테도 늘 담배 피우지 말란 이야기를 해요. 나는 언니가 좋으니까 언니가 담배를 안 샀으면 좋겠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오천 원을 내밀었다. 언니는 오천 원을 가만히 받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언니가 나더러 집에 가라고 하지 않아서 한동안 거기 같이 서 있었다. 언니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서서히 오줌이 마려웠으므로 그냥 집으로 향했다. 인사는 하지 못했다.


언니는 거기 얼마만큼 더 서 있었을까. 당시의 언니 나이보다 두 배 많은 나이가 되고 보니, 별별 생각이 머리를 흔든다. 언니는 왜 그 나이에 담배를 피웠을까, 교복을 더듬어 생각해보면 당시 언니의 나이는 열넷에서 열여섯 사이였을 텐데, 언니에게 누가 담배를 가르쳐줬을까, 언니는 왜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언니가 담배를 피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그래서 언니는 다시 장미 담배를 사줄 아이를 찾았을까, 언니는 장미 담배가 사라진 지금도 나를 기억할까, 언니는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 아파트에 살고 있고, 그 길목을 걷는다. 그리고, 거기 떨어진 담배꽁초를 볼 때마다 언니를 떠올린다. 어느 날 나는, 반복되는 그리움이 완전히 휘발되기 전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편지는 꽤 길었고, 별 내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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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언니가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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